잠을 아주 푹 잤다. 까미노를 시작한 이후 남편이 코를 고는 며칠을 제외하고는 잠을 아주 잘 잔다. 나야 워낙 잠을 잘 자니 그렇다 치고 한국에선 하루에 길게 자야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했던 남편이 몇 시간씩 푹 자는 것은 큰 변화였다. 커다란 덩치에 근육량도 어마어마한데 - 여기서도 남편의 종아리는 사람들에게 경이로운 크기다. 존 할아버지는 자기 다리는 스파게티에 불과하다며 부러워했다. -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머리만 썼으니 운동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자기 몸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쓰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싶다.
침대를 정리하다가 베개보와 베개 사이에 갈색의 작은 벌레가 한 마리 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까미노에서 베드 버그 bed bug라 불리는 빈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는 빈대를 본 적도 없고 물려본 적도 없어서 얼마나 위험한 녀석인지 감을 잡을 수는 없지만 한 번 물리면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을 만큼 심각하게 부어오르고 환촉에 시달려 온 몸이 몹시 가려운 기분에 생활이 어려울 지경이라고들 말하니 우습게 볼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이곳 사람들도 매우 경계를 하는 터라 빈대에 물린 순례객은 알베르게에서 받아주지 않거나 온 짐과 옷을 모두 털어 소독을 받는 굴욕을 겪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내 베개에 있는 것이 그 무시무시한 빈대인가 싶어서 인터넷으로 모양새를 찾아보니 빈대가 맞았다. 깔끔해 보이는 사립 알베르게에 빈대가 있을 리가 없다며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베가에서부터 베개보에 묻어온 것이라 여겼다. 나는 황급히 물린 곳이 있는지 몸을 살펴봤지만 빨갛게 자국이 남은 곳도, 가려운 곳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24시간이 지나야 증상이 나온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나를 본 남편이 빈대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것이 나를 물었으면 피로 배가 불룩했을텐데 그렇지는 않고 그저 내 머리에 눌려 찌부러진 채 다리만 조금 까딱거리고 있을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부디 내가 빈대를 무찌른 것이기를 바랐다.
오늘도 역시 더운 날씨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걷기는 걸어야겠는데 더위를 견디느라 힘을 많이 써버린 몸뚱이는 무거운 가방을 견딜 힘이 모자랐다. 게다가 높지는 않아도 크고 작은 언덕을 수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해야 했다. 물을 뜰 곳도 없고 마땅하게 앉아서 쉴 곳도 없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는 갈리시아로 들어서면서부터 정확도가 떨어지고 표시가 되지 않은 마을도 여럿 있어서 영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길을 걷은 것은 언제나 더 지치게 마련이었다.
바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고 맥주 한 잔을 마신 뒤 두어 시간쯤 걸었을까? 갑자기 사리아 Sarria가 나타났다. 또 저녁 나절에나 도착하겠지 싶어 기대도 하지 않고 땅만 보며 가고 있었는데 오늘의 목적지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나니 뭔가 행운을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마지막 고비는 있었다. 가파른 언덕에 수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는데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오르느라 끙끙거리고 있으니 뒤에 오던 다른 순례객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도 걷는 꼴이 우스운 것은 알지만 다리가 말을 안 듣는 것을 어쩌겠는가...
계단을 다 오른 후에 나타난 언덕길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그림을 보고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몇 백 년 전의 진짜 순례객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는데 바람을 맞으며 아이의 손을 잡고, 노부를 부축하여 알베르게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그 모습이 어딘가 절실해 보였다. 분명 고단한 삶인 와중에 떠난 길이었을텐데 얼마나 간절한 소망이 그들을 이 길 위로 불러들였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의 우리처럼 몸을 보호할 많은 옷과 장비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알베르게가 지금과 같은 편안한 시설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비와 바람, 추위를 피해 몸을 좀 쉴 수 있는 곳이었겠지. 그럼에도 그 숙소를 내어주고 그들을 돌봐준 마을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들이 힘든 길을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벽화를 보는 순간 오래전 그때로 빨려 들어가 이 길을 걸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낀 것만 같아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들이 걸은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몹시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시간과 시간이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길을 걷다 말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주책스럽게 여겨져 그 생각들에서 얼른 빠져나와 다시 길을 걸었다.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성당을 찾아내는 타이완 친구들 자흐와 밍쉔이 알려준 길로 들어서니 큰 수도원이 있었다. 그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모나스떼레 막달레나 Monastere Magdalena 알베르게의 입구를 찾느라 좀 헤매긴 했지만 무사히 도착은 했다.
10유로면 공립 알베르게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다시 공립을 찾아 나설 엄두도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시설이 매우 좋아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넓은 주방에 홀딱 반한 남편을 데리고 나갈 명분도 없었다. 100명도 넘게 수용하는 공간에 머무는 사람이 고작 예닐곱 명뿐이었으니 한적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큰 마을에 오면 자축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져서는 바에 들러 괜찮은 레스토랑을 좀 찾아보기로 했다. - 갈리시아 지방의 알베르게에는 와이파이 되는 곳이 없었다. 있어도 유료이니 차라리 바에서 맥주라도 마시며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와인에 탄산음료를 섞은 것이 아니라 과일을 가득 넣어 담근 진짜 샹그리아 한 잔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한참을 검색해봤지만 우리의 구미를 당길만한 식당은 찾지 못했다. 사진을 올리는 것이 홍보에는 악영향이었던 레스토랑만 몇 개 나올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또 마트에 가기로 했다.
문제는 이용할 만 한 큰 마트가 언덕을 끝까지 내려가야만 하는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샤워를 마친 상태여서 다시 땀을 흘리지 않도록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매일 아침 숲길에서 만나는 검은 민달팽이가 몸을 움츠리는 속도만큼 느리게 말이다. 남편은 그 녀석들이 그리 느리니 지구를 점령하지 못하고 햇빛에 타 죽는 것이라며 걱정을 했는데 우리가 딱 그 짝이었다. 지구 점령은 둘째치고 햇빛에 타 죽기 직전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햇빛에 타 죽기 딱 직전에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곳의 고기가 워낙에 싸고 맛이 좋아서 스테이크를 좀 해먹을 생각이었다. 며칠 째 계속 만나는 풍경이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들이었다. 그렇게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산 녀석들이라면 감사한 마음으로 육식을 즐길 수 있겠다며 미안한 마음을 애써 합리화했다.
배불리 감사하게 음식을 먹고 나서도 밥이 좀 남아 남편은 내일 아침에 먹을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무언가 화려하게 음식을 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자기는 불가리안인 니콜라이라고 소개하며 음식 하는 것을 좀 봐도 되겠는지 물었다. 자신은 음식을 잘 못해 매일 맛없는 파스타만 해 먹는데 요리를 매우 잘 하는 것 같다며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볶음밥 만드는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고 니콜라이는 집으로 돌아가서 꼭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다.
니꼴라이는 남편에게 술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대답이 너무 빤한 질문에 남편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니 자신이 먹고 있던 술을 내어주었다. 작은 물통에 담긴 노란 술은 라키아 Rakia라고 하는 불가리아 술인데 자두로 담근 술이라고 했다. 그 맛과 향이 기가 막혔다. 우리가 좋아라 하니 니콜라이는 남은 술을 모두 가져가라며 밀어주었고 라키아 담그는 법을 이메일로 보내주겠다며 메일 주소까지 적어갔다.
우리는 너무 감사한 마음에 까미노의 마지막, 묵시아에서 꼭 이 술로 축배를 들겠노라고 니꼴라이에게 약속했다.
예기치 않은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했다.
베가의 십자가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