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가 한가한데다 사람들도 느긋해서 우리의 출발도 좀 더뎌졌다. 매일 저녁, 날이 더워지기 전에 가보자, 새벽에 일어나 출발하자 다짐을 했지만 이미 몸에 익어버린 기상시간은 좀처럼 당겨지지를 않았다. 어제 만들어놓은 볶음밥이 맛있어서 천천히 먹느라 출발은 더욱 느렸다. 날이 덥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나는 가방을 평소와 좀 다르게 꾸렸더니 어깨가 눌려 오래 걷기 힘들겠다 싶었다. 하는 수 없이 가다 말고 길 가에 서서 가방을 다시 꾸려야 했다. 그런데 이것이 또, 평소처럼 꾸렸는데도 아래로 무게가 쏠리면서 영 편하지가 않았다.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양이었다. 어깨며 발이며 매일 혹사당하는 녀석들이 '이제 일 좀 그만 시키라고! 할 만큼 했다니까!'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알고 있다. 온몸이 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분명 죽을 듯이 일하는 곳은 몇 군데뿐이고 나머지는 조금 도울 뿐이거나 늘 해오던 대로의 소소한 일을 하고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편하게 옮겨지고 있다. 물론 상황이 그러하니 빈둥거리는 녀석들을 탓할 수는 없다. 머리카락이나 새끼손가락으로 가방을 들고 걸어갈 수야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하지만 군소리 없이 일하던 녀석들은 이미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해서 회복이 더뎌지고 갑자기 살갗이 화하게 타오르는 듯한 이상감각에 시달리고 있으며 오른발의 가운데 발가락처럼 이미 정신줄을 놓고 멍하게 멈춰버리기도 하였다.
'어쩌겠니, 걸어야 한다면, 멈출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지 않겠니.'
나는 내 지체들의 수장으로서 그렇게 잔인한 설득을 할 수는 없었다. 그따위 말은 지체의 고통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조금도 알려고 하지 않을 때나 가능한 말이었다. 스스로를 포기해버리면 모를까 이미 한계에 다다른 지체에게 그 이상을 요구하고 견디지 못하는 것을 탓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계를 넘은 가방을 메도록 강요한 것을 사죄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이고 짐의 위치를 옮겨 어깨와 등, 허리로 골고루 무게가 분산되도록 노력했다. 그도 힘들면 가방을 업듯이 두 손으로 받쳐 어깨가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당장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어 좁은 데서 옥죄어져 있던 가운데 발가락에게 공간을 좀 내주었다. 그리고 자주 쉬었다. 가방 무게를 줄일 수 없다면 천천히 가기로 했다.
내 지체의 아우성들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 녀석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의가 조금도 없는 희생의 강요를 집어치우고 함께 걸어갈 방법을 궁리해주는 마음과 노력이었다.
이러나저러나 한계가 정해져 있는 일이라면 '모두 다 함께 노력하여 이룬 일이다' 혹은 '모두 함께 노력했지만 이루지 못했구나. 그래도 함께여서 행복했다.'라는 따뜻함이라도 남기는 것이 옳다.
나에게도 그런 작은 마음과 배려가 주어졌었더라면...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그랬으면 이 길에 오르지도 못했을 테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우리는 산티아고까지 100km가 남은 지점에 이르렀다. 잘 생긴 셰퍼트 한 마리가 마치 순례객들을 맞이해주는 것처럼 100km 표지석 앞에 자리를 잡고 누워 기꺼이 사진의 모델이 되어주고 있었다 - 이 지역에서 셰퍼트는 우리나라의 시골 진돗개처럼 돌아다녔다.-.
이제 목적지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했지만 이 평화로운 생활을 끝낼 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해서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이쪽 지역의 산은 우리나라의 산길과 매우 흡사했다. 솔잎이 깔린 작은 오솔길들이 이어져있어서 마치 그 길의 끝에 가면 막걸리와 파전을 팔거나 허름한 백숙집이라도 있을 것만 같았다.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간 것 같은 반가운 기분으로 길을 걸었다.
산 정상에 오르니 저 멀리 포르토마린 Portomarin이 보였다. 이름을 보고 벌써 바닷가 마을에 온 것일까 생각했지만 그럴리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본 중 가장 큰 강을 끼고 있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마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매우 매우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했는데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진이 빠져 주저앉아버렸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 다시 한 번 일정을 확인했다. 산티아고까지는 무척 여유가 있는 일정이었으나 묵시아와 피스테라까지 가기로 한 이상 하루하루가 빠듯하게 되어버렸다.
몇 번씩 지도를 보고 거리를 계산해가며 일정을 짜는데 실제로 걷다 보면 컨디션이나 길 상태에 따라 마음이 수시로 바뀌었다. 오늘도 역시 갈 수 있는 만큼 더 가보자는 마음이었으나 막상 시간이 늦어지고 가파른 계단에 체력을 쏟아버렸더니만 마음이 약해져서는 내일부터 조금씩 바쁘게 움직이면 될 것이라고 타협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자흐와 밍쉔은 마을 어귀에서 우리에게 성당의 위치와 공립 알베르게를 안내해주었다. 정작 그 친구들은 항상 사립 알베르게에 묵는다.
이렇게 비좁고 사람이 가득 찬 알베르게는 처음이었다.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둘이 나란히 이 층에 자리를 펴고는 마트를 찾아 나섰다. 순례객을 상대로 하는 좀 더 비싼 마트를 피하고 바로 뒷골목에 있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마트를 찾아냈다. 도시락 재료와 음료수를 이것저것 샀는데 남편이 아직도 전통술이라는 오루호 orujo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류 코너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마트 주인 할아버지에게 가 오루호라는 술이 있는지 물었다. 할아버지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만 마트 한 켠에 딸려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자신이 마시다 만 것 같은 노란색의 술이 담긴 술병과 작은 잔을 들고 나오셨다. 그러더니 일단 한 번 먹어보라며 잔부터 채워 내미셔서 남편 한 잔, 나 한 잔 들이켰다.
할아버지께서 그렇게까지 열의를 보여주셨는데 사지 않고 그냥 나올 수가 없어서 직접 만들어 파는 것 같은 새 병 하나를 바구니에 넣었다. 뭐 만원도 안 되는 가격이니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주방은 있으나 도구는 하나도 없는 주방인 탓에 우리 냄비에 라면만 끓여먹고 꼬맹이들이 어디선가 사온 신라면이니 튀김우동, 그리고 캔에 든 김치를 안주삼아 오루호를 홀짝홀짝 마셨다. 캬! 그 맛이 어찌나 달고 독하던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짜낸 포도 찌꺼기로 만든 술이라는데 독하게도 짜낸 모양이었다. 와인으로도 모자라 오루호까지 만든 걸 보면 스페인 사람들의 술 사랑이 엄청난 듯했다.
그나저나 놀랍게도 무뢰배들이 벌써 이곳까지 왔다. 버스를 탔나? 가방을 부쳤나?
우리 방이 아닌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