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와 싸우지만 않으면 나의 걸음 속도는 한결 빨라졌다. 적당히 선선한 날씨 덕분에 두 시가 좀 넘어서 오늘 가기로 한 팔라스 델 레이 Palas del Rei에 도착했다. 우리는 좀 멀어서 고민이 되었던 멜리데 Melide까지 더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길을 잃어서든 무뢰배들을 피해서든 그도 아니면 날씨가 좋아 잘 걸어서든 처음 마음에 둔 마을까지 꼭 가게 되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거리를 계산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무언가가 우리를 가야 할 곳에 데려다 놓는 것만 같았다.
녹색으로 뒤덮인 길을 끊임없이 걷다가 문득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 너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떠나길 정말 잘했다!"
여행이 끝난 뒤의 일은 걱정이 되지만 지금 걱정에 몰두한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집으로 돌아간 뒤 걱정하기로 했다. 이 길 위에서 수없이 겪은 일이지 않은가. 가보지 않은 길, 다가오지 않은 시간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그곳에 무엇이 있던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뿐이었다.
십 년 뒤, 이십 년 뒤의 삶으로 언제나 머리가 무거웠던 내가 이런 무모하리만치 큰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역할이 컸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가벼울 수 있는지에 대한 쿤데라의 성찰은 나에게 묘한 자유로움을 주었다. 다행히 한 번 뿐이니 대충 살자거나 되는대로 막 살자는 방종은 분명 아니었다. 내가 내 삶의 무게에 눌려 지쳐버린 것은 내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오만함 때문인 것을 깨달았고 나의 삶에 순응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었다.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거나 남들보다 특별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거나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면 잘못 산 것만 같은 죄책감을 갖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 스님이 깨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스님은 깨진 독을 물에 풍덩 던져버렸다. 어린 시절 그 장면이 제법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는데 서른이 한참 넘은 지금에 와서야 그렇게 할 용기가 생긴 것이었다. 감히 이 작은 몸뚱이에 세상 것을 주워 담아 봤자 얼마나 담겠는가. 내 몸뚱이를 세상에 던져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었다.
나의 시간은 이러나저러나 흘러가고 있는데 가장 자연스럽고 충만하게 사는 것은 흘러가는 그 시간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시간이 나에게 주는 것이 나의 삶이거니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 마음을 먹고 나니 모든 것이 편안해졌고 수월해졌다.
'한 번'에 대해서는 그 어떤 평가도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떠난 길 위에서 내가 이 세상과 온전한 하나임을, 이곳이 나를 품어주었음을 느끼고 나니 더 이상의 충만감은 있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조금 더 충만할 수는 있을 것도 같지만...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결국은 40km를 걸었다. 멜리데 Melide에는 뿔뽀 pulpo, 문어요리가 유명해서 그것을 놓치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7시 반이 다 되어 도착한 멜리데 마을 입구에서 '그라나차 Granacha'라는 유명한 식당의 위치를 확인했는데 알 수 없는 글자와 '9:00'라는 시간이 적혀있어서 마음이 몹시 다급했다. 식당에서 공립 알베르게까지 거리가 족히 1.5km는 되었기 때문에 마트가 문을 닫기 전에 장을 봐 놓고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나오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삐그덕거리는 몸으로 뛴다고 뛰었으나 뛰어지지 않는 상태로 마음만 바빴다.
하지만 막상 들어간 식당은 파장은 커녕 이제 막 저녁 장사를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안내문은 아마도 아침 9:00시에 문을 연다는 뜻이었던 모양이었다. 진작 식당에 들어와 물어볼 것을 괜히 피곤한 몸을 다그쳐가며 서둘렀지 뭔가. 그래도 알베르게가 10시면 문을 닫으니 여유 있게 저녁식사를 하려면 서두르는 것이 더 낫기는 했다.
뿔뽀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문어요리였다. 삶은 문어다리를 약간 도톰하게 썰어 소금과 올리브 오일, 고춧가루를 약간 뿌린 게 전부였다. 처음엔 강렬한 우리의 초고추장 맛과 비교가 되어 양념이 심심한가 싶었는데 그 맛이 입에 익고 나니 문어살의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과 올리브 오일이 매우 잘 어울려 혀에 부드럽게 감겼다. 남편이 빈 페트에 담아온 오루호와 함께 먹으니 한정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뿔뽀 한 접시와 슐레타 한 접시로 배를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것이 충만한 상태가 되었다.
한 번뿐인 삶.
어떻게 흘러가든지 그것이 곧 나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