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너무 무리를 한 탓인지 까미노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일어나 움직이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속이 좀 울렁거리는 것도 같았다. 그래도 마냥 쉴 수는 없었다. 수프와 삶은 계란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나서야 했다. 다행히 조금 걷기 시작하니 내 몸도 파업을 포기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는지 그런대로 움직여졌다.
여름을 향해가던 날씨가 다시 추워지는 것은 이상기온인 것인지 아니면 지역차인 것인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나에겐 좋은 날씨이니 걷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길이 너무 아쉬워서 발걸음은 한없이 느려졌다. 이제 앞으로 남은 길에 대한 기대보다 뒤에 남겨둔 추억이 더 마음을 많이 차지하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에디와 제임스를 처음 만났을 때, 라라소냐에서 처음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모두와 함께 나눠먹었던 저녁, 그라뇽이나 토스안토스에서 만난 특별한 사람들과의 저녁식사 등을 하나씩 되짚어 떠올렸다. 가방만 무겁게 챙겼을 뿐, 우리가 준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시간 위에 올라섰을 뿐인데 모든 것은 마련되어있었다. 모두가 이 기적 같은 일에 기뻐했고 감사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어려움과 불쾌함과 고된 시간들이 이어지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의 어딘가에 따뜻한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세상은 살맛 나는 곳으로 여겨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을 우리는 '빛'이라고 부르고 그 빛은 생명으로부터만 나온다. 생명의 순수성이 잘 드러날수록 빛은 더욱 뜨겁고 선명하게 타오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짙은 어둠에서도 이곳을 쉽게 찾아내고 금세 뜨겁게 타오르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소중한 시간이 끝나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점심을 먹으러 들른 아르주아 Arzua의 바에서 에디와 미콜의 메일을 확인했다. 에디는 몇 번이고 메일을 보내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누구와 함께 걸으며 무슨 일을 겪었는지 무척 궁금해했다. 미콜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에 우리가 언제쯤 도착하는지, 순례자 미사에서 만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런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벌써부터 마음이 시큰거렸다. 이 길 위에서는 함께 걷지 않아도 같은 길 위에 있고,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이제 그 시간이 끝나가는 것이다.
걸음을 너무 잡은 탓인지 길을 잘 모르는 탓인지 제법 시간이 늦었는데도 우리는 산타 이레네 Santa Irene에 이르지 못했다. 요 며칠을 무리한 탓에 남편의 허리와 고관절 통증이 심해져서 고속도로 길가에 덩그러니 있는 살쎄다 Salceda라는 사립 알베르게에 머물고 하루를 천천히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힘겹게 도착한 알베르게의 주인아저씨가 너무 요란스럽게 가격을 설명하고 호들갑스럽게 우리의 결정을 몰아붙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곳을 찾아보자며 발 길을 돌렸다. 그렇게 돌린 발걸음은 결국 산타 이레네까지 이르고 말았다. 우리는 또 와야 할 곳까지 오고야 만 것이었다.
침대가 36개뿐인 작은 숙소에 10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묵어 매우 조용하고 한산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 브라질 할머니 파테테가 와있었다. 부르고스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할머니는 그때만 해도 지팡이에 몸을 겨우 의지해 한 걸음 한 걸음을 무척 괴롭게 걷는 상태였었다. 그랬던 할머니가 우리가 중간에 쉬어서인지, 아니면 그분이 중간에 버스나 기차를 타셔서인지 하여간 벌써 이곳에 와 계신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연세에 이곳까지 포기하지 않고 오신 것이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할머니와는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았지만 그분은 나를 너무나 반가워해주셨고 내 손을 잡고 당신의 얼굴에 대었다가 몇 번이나 입을 맞춰주셨다.
갑자기 존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매일 아침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가도 저녁이 되면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알게 돼!"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인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파테테 할머니와의 만남은 그냥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곳에 올 충분한 이유였던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