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 입성하기 위한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도 않고 우리의 마지막이 어떠할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순례자'라는 이름으로 이 길을 걸어왔다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사실 순례자가 무엇을 향해 가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이 큰 강처럼 수많은 생명들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지닌 채 모여들어 힘차게 흘렀다가 다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나누어주는 곳임은 분명했다. 남편의 말처럼 오래 전의 순례객은 죽음과 삶의 문제에 직접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과 함께 삶을 사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요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죽음의 문제는 의술을 행하는 인간의 손에 달려있게 되면서 신께 의지하는 삶의 형태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생명의 살고 죽음이 어디 육체에만 국한된 것이겠는가. 영혼의 살고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리 뛰어난 의술로도 어찌할 수 없고 그것은 오로지 신의 영역, 생명의 영역에만 속해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이성의 부분으로는 알아채지 못한 채 영혼의 갈망에 이끌려 이곳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로스 아르코스로 이르는 산길을 헤매다 에디와 제임스를 만났을 때 제임스가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똑똑한 자가 되려거든 지식을 모으고 지혜로운 자가 되려거든 가진 것을 비워라'
어쩌면 요즘을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 많은 지식을 주워 담아 똑똑하게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나의 영혼이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지,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점점 더 알지 못하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로스 아르코스의 성당에서 기도문을 받아 들고 눈물을 흘렸을 때, 제임스와 함께 노래를 불렀을 때, 에디와 미콜의 소식에 마음이 시큰해졌을 때, 파테테 할머니를 만나 가슴이 뜨거워졌을 때 나의 이성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내 영혼이 기쁨에 차 충만함을 느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모르는 사이 내 영혼은 서서히 회복되어가고 다시 생명의 빛을 되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도 조심스럽게 '순례자'였음을 고백할 수 있을 것 같다.
저 멀리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가 보이기 시작했다.
걸음을 바삐 옮기는 사람들을 앞서 보내고 우리는 천천히, 느리게 걸어 들어갔다.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에 드디어 발을 들여놓았다.
매일매일 만나던 빨간색 테두리가 쳐진 마을의 이름이 적힌 간판에 'Santiago de Compostela'라고 적혀있었다.
우리가 드디어 이곳에 다다른 것인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은 채 사진만 몇 장 찍고는 마을 초입에 있는 산 라자로 San Lazaro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우리는 오늘 대성당에 가지 않을 예정이었다. 내일이 주일이기도 했고 마지막 한 걸음을 아껴두고 싶기도 했다.
숙소는 매우 깨끗한데다가 탁구대를 놓아도 좋을 만큼 넓은 주방이 있어서 남편은 몹시 신이 났다. 숙소 가까운 곳에 까르푸가 있어서 - 1km면 걷기에도 가까운 거리이다... 암... - 우리는 저녁 만찬을 준비했다. 몇 개의 크고 작은 산을 넘으면서 우리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단어는 '닭백숙'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그 한을 풀 마음으로 커다란 닭을 한 마리 집어 들었다. 몇 가지 필요한 재료와 커다란 맥주 한 병, 그리고 평소와 똑같이 1유로짜리 빵과 햄, 치즈를 담았다. 삼십일을 넘게 그렇게 살다 보니 대형마트를 가득 채운 수많은 음식들이 많아도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양 손 가득 음식을 사들고 다시 숙소로 걸어 돌아와 넓디넓은 주방을 독차지하고는 닭을 삶았다. 마늘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뭐... 오늘은 모두 기쁜 날일테니 너그러운 이해를 바랐다.
모든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 '통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우리는 축배를 들었다. 산티아고 무사 입성과 내일의 미사를 위해, 마침과 또 다른 시작을 위해 건배를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을 터뜨리고는 한참을 그치지 못했다.
식당에는 한 쌍의 부부와 혼자 식사를 하던 프랑스 아저씨 말고도 한 무리의 시끌벅적한 젊은 남녀가 있었다.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눌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식사를 하기 위해 몇 명의 일행이 방에서 나오고 난 뒤에야 그들이 장애우들인 것을 알았다. 스무 살은 훌쩍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몇몇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상태였고 몇몇은 보호자들이 옆에서 일일이 손길을 주어야 했다.
잔뜩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이고 우리의 닭을 보며 과하게 놀라던 한 친구의 손에 손때가 잔뜩 묻은 줄이 하나 들려있는 것을 그제야 눈치챘다.
프랑스인 작업치료사들이 자신들의 환자와 함께 당나귀 한 마리에 짐을 싣고 60km 정도를 걸어왔다고 했다. 그 말을 해주는 치료사의 얼굴에는 사랑스러움과 자랑스러움이 가득 차 빛이 날 정도였다.
그들이 잔을 부딪히고 서로 음식을 챙겨주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몸을 기대 귀를 기울여주는 모습들은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그들 주변에만 다른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들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였는지, 나의 아이들이 그리워서였는지, 나의 아이들의 삶에서 빠져나와 도망친 것이 미안해서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삼십삼일의 광야를 헤맨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 결국은 이것이었나, 이 답을 주기 위해 매일매일 가야 할 곳에 결국은 이르도록 이끄신 것인가 하는 감사와 원망이 뒤섞여서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내 영혼이 응답하는 것을 내가 어찌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마치 이곳에서 내가 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인 것 같았다.
산티아고에서 틔워낸 나의 연둣빛 잎사귀는 바로 이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