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

by 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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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인민박 보스케에 보낼 짐만 가볍게 들고 성당으로 갔다. 3km는 순례자 미사를 드릴 마음의 준비를 하기 매우 적당한 거리였다.

성당에는 배낭을 메고 갈 수 없어서 성당 입구 맞은편 짐 보관소에 가방을 맡기고 바에 앉아 민박집 사장님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1시 반에 성당 근처로 나올 일이 있다는 소식에 우리는 황급히 프랑스 생장피에트포르에서 미리 보낸 우리의 나머지 짐을 찾아와야 했다. 열두 시 미사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짐 보관료로 8유로를 더 내더라도 가방을 미리 찾아 보관소에 가져다 놓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한 호텔 창고에 한 달이 넘도록 잘 보관되어져 있었던 우리의 반 쪽들을 다시 만나 반가웠지만 이것들은 다시 민박집으로 보내져 며칠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일의 우선순위를 그렇게 정한 덕분에 짐 보관소에서 미콜과 페데리카를 만날 수 있었다. 이때 그냥 같이 움직였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보다 먼저 보관소에 들어와 짐을 맡긴 언니들을 성당 안에서 다시 만나자며 먼저 보냈는데 성당 안에 사람이 너무 많이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날 한 시에 어디선가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외롭지 않았다. 언니들은 못 찾았지만 자흐와 밍쉔도 보이고 가장 우울했던 엘 부르고 라네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온 재영 씨도 보였다. 군데군데 얼굴을 아는 사람들과도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리고 의자에 앉지 못해 비집고 들어간 공간의 바로 옆 의자에는 어제 봤던 자폐증 청년이 앉아 나를 반가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압니다... 그렇게 준비하지 않으셔도 이미 당신의 뜻은 알아들었습니다...'
미사 내내 차분하게 앉아있는 녀석이 기특해서 몇 번이고 눈을 맞춰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순례객을 위한 미사가 거대한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 향로)를 사람들 머리 위로 그네 태우듯 흔들어 보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가톨릭 신자와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뒤섞인 성당 안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소리로 비록 분주하고 어수선했지만 힘들고 고단했던 길을 무사히 마친 사람들의 환희가 향과 함께 퍼져 가슴팍이 좀 뻐근해졌다.

미사를 드리면서 나는 한 가지 청이 생겼다. 종교가 기복신앙에 머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서 뭔가를 잘 청하지 않는 편이지만 문득 죽음의 직전에 꼭 삶을 돌아볼 시간을 허락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하고 싶어졌다.

처음 까미노에 들어섰을 때 800km의 이 길이 나의 삶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세상에 첫 발을 들이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생겨나고 홀로서기를 했으며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기도 했다. 그런 지향 때문이었을까? 오늘의 미사는 마치 나의 장례미사인 것만 같았다. 나의 '작은 삶'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곳곳에 보이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성당을 울리는 성가대의 노랫소리를 배경으로 사람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천천히 훑어보니 길 위의 시간들이 한 장면 한 장면 지나가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모든 것을 끝내고 난 후의 평화로움 같은 것이 마음속에 따뜻하게 퍼졌다. 실제 나의 삶에서도 죽음 직전 이런 평화로운 시간에 머무는 것이 허락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 소망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며, 다른 것은 크게 바라지 않을테니 그 시간만큼은 꼭 허락해달라고 미사 내내 마음속으로 청하고 또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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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남매 꼬맹이들은 영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아침에 들렀던 바의 와이파이를 몰래 쓰려고 다시 갔을 때 순례자 확인증을 받으러 온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모두 건강하게 길을 마치고 오늘 밤 마드리드에 들렀다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우리가 한참 남미를 헤매고 있을 때쯤 얼큰한 순댓국을 한 사발 먹고 있을 것이라며 잔뜩 약을 올렸다. 우리는 공주로 순댓국 먹으러 가마 하고 약속하고는 그 길로 헤어졌다.

그 뒤로도 순례자 사무소 앞의 골목에 앉아 있는 동안 낯이 익은 사람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모두가 화사하게 웃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화가 나 있거나 세상에 찌든 표정을 지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꾸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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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또 다른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메뉴는 다시 한번 뿔뽀 pulpo였다. 내일부터 나머지 여정을 무사히 가려면 잘 먹어야 한다는 핑계였지만 멜리데에서 먹은 뿔뽀가 못내 그리워서이기도 했다.
'보데곤 오스 콘체이로스 뿔뻬리아 Bodegon os Concheiros Pulperia'라는 식당은 딱 봐도 오래된 느낌의 식당이었고 손님들은 모두 동네 어르신들이었다. 흡사 우리나라의 오래된 해장국집의 느낌이었다. 몇 년을 재활용했는지 알 수 없는 빈 병에 직접 만든 와인을 막걸리 마시기 딱 좋아 보이는 사발과 함께 내주어 깜짝 놀랐다. 놀람도 잠시, 그 사발로 들이키는 와인이 이 공간에 얼마나 제격인지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뿔뽀는 멜리데의 그것보다 더 맛있었다. 분위기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식감이 조금 더 쫄깃하고 문어향이 더 짙게 올라왔다. 문어는 둘째치더라도 빵이 너무 맛있어서 문어 육즙과 올리브 오일이 뒤섞인 국물에 찍어먹으면 그 맛이 환상적이었다. 조르자 zorza라고 하는 고기 요리도 하나 시켰는데 향은 딱 제육볶음의 향이었다. 맵지 않은 고춧가루를 뿌려 센 불에 구운 돼지고기였는데 양념 맛은 좀 심심했지만 고기 맛이 너무 담백해서 감탄에 감탄을 하며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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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8-02-22-25_198.JPG 뿔뽀 pulpo와 와인
2015-05-18-02-40-58_200.JPG 조르자 zor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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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상상만 하던 그 산티아고는 그렇게 일상이 되어 흘러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얻어가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미사 시간 중에도 울음을 참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훔쳐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그들의 마음속에서도 어젯밤의 나처럼 영혼이 응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일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각자만이 알 일이지만 이곳은 큰 강이 끝나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시작점, 떼제에서의 종소리처럼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영원의 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곳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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