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까미노가 시작되었다.
산티아고는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인 곳이었다. 콤포스텔라 대성당은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모셔지면서 성지가 된 곳이지만 정작 야고보의 유해가 바다에서 조가비에 담겨 떠올랐다고 전해지는 곳은 피스테라 Fisterra라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묵시아 Muxia는 성모님께서 커다란 바위를 타고 복음 선포의 임무를 수행하던 야고보에게 발현하시었다고 전해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까미노의 마지막을 피스테라 또는 묵시아에서 보내게 된다. 대략 90km에 이르는 그 길은 까미노의 여운을 조용히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해주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도 불필요한 짐은 민박집으로 모두 보내고 꼭 필요한 짐만 다시 추려 길을 떠났다. 필요한 것이... 많지 않았다. 나의 걱정과 불안을 잠재워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물건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한결 가벼워진 가방을 메고 걸으니 걸음이 빨라진 것 같고 바람도 훨씬 잘 느껴지 것 같았다. 이렇게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을...
한참을 걷다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잠깐 쉬었다 가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재영 씨가 불쑥 나타났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반가워서 길을 떠나지 못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재영 씨는 늘 혼자서 묵묵하게 걷거나 영어가 수월해 외국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던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몇 번을 같은 알베르게에 묵고도 쉽게 가까워지지 않아 이렇게 인연이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재영 씨의 존재가 뚜렷하게 다가와 관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재영 씨는 우리에게 직박구리 같은 사람이 되었다.
재영 씨와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다시 길을 나섰고 우리는 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람들이 거의 없는 한적한 길을 오래도록 걸었다.
얼마나 왔는지 알 수는 없으나 거의 다 오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바에 잠시 들렀다. 무슨 음료를 시키던 타파즈를 한 접시 공짜로 내어주는 주인의 인심에 반해 제법 오래 앉아있었다. 한참을 쉬고 있던 그때, 길 건너로 미콜과 페데리카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럴 수가! 성당에서 만나지 못하고는 다시 못 만날 줄 알았다. 마지막 인사를 메일로나 해야 할까 하고 아쉬워했었다. 오늘 우리가 워낙 늦게 출발해서 아무도 없는 길을 걸을 줄 알았는데 바에는 재영 씨와 언니들, 오래전부터 안면이 좀 있던 독일 청년들까지 모여서는 왁자지껄 해졌다.
새로운 시작은 또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일들로 가득 찼다.
네그레이라 Negreira까지는 5km 남았다는 바 주인아저씨 말에 우리는 마음 놓고 한참을 떠들었다. 주인아저씨가 샌드위치며 샐러드를 자꾸 내주시는 바람에 더 오래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맥주 한 잔에 너무 과한 대접을 받아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고는 겨우 자리를 털었다.
그 자리 덕분에 미콜이 매번 '비빔밥'이라고 말하며 뜨거운 물을 붓는다고 했던 한국 음식의 정체를 드디어 밝혀냈다. 미콜은 한국에서 먹어본 적이 있다며 뜨거운 물을 붓는 '비빔밥'을 만들어 줄 수 있냐고 혹은 까미노에 비빔밥 가게를 차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몇 번을 물어보고 고민을 해봐도 어떤 음식을 비빔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바 주인이 내어준 샐러드에 들어있던 콩나물이 궁금증을 푸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미콜이 맛있다고 말하던 그 음식은 다름 아닌 '콩나물국밥'이었다.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 서로 확인한 후에야 궁금증이 완전히 풀렸다. 어찌해서 이름을 잘못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미콜의 '비빔밥'은 샐러드에 콩나물이 들어있지 않았다면 이번 여행의 세 번째 미스터리로 남을 뻔했다. - 첫 번째는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서 큰 소리로 진지하게 연설하던 청년의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러시아 공항 직원이 내 여권을 가져가 시간을 끌었던 일이었다.-
바에서 출발한 우리는 한 무리가 되어 네그레이라를 향해 걸었다. 이때부터 5km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바 주인은 분명 네그레이라까지 5km 남았다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만큼을 걸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또 5km가 남았다고 했다. 우리는 제법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언니들 걸음이 절대로 느린 사람들이 아닌데... 여전히 마을은 나타나지 않았다. 구글 지도에서도 우리의 위치와 마을의 거리가 도통 5km 이하로 좁혀지지를 않았다. 도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우리 몰래 길이 울렁거리며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사람들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지 않았더라면 쉽지 않은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5km의 마법에서 풀려난 시간은 이미 저녁 7시 반이 넘은 때였다. 족히 10km는 넘게 걸은 것 같았다. 급기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우리는 서둘러 알베르게를 찾아야 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립 알베르게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있다가 우리를 보고는 공립은 이미 다 찼으니 자기네 숙소에 묵으라고 했다. 나나 페데리카나 그런 이야기는 왠지 호객행위를 하는 것 같아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우리는 서로 뜻이 맞아 직접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가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길이 또 삼십 분은 더 되었다. 알베르게에 거의 다 이르렀을 무렵, 그곳으로 교대근무를 하러 가던 직원이 차를 세우고 우리에게 그곳이 이미 다 찼다고 한 번 더 확인을 해주었다. 우리는 직원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발 길을 돌릴 수 있었다.
'보고서야 믿는' 어리석은 제자들이 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결국 '루아 LUA'라고 하는 처음 지나친 그 사립 알베르게로 다시 돌아왔다. 페데리카는 친구가 추천해 준 다른 알베르게로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그곳은 마을 초입까지 다시 돌아가야 했고 무엇보다 마트와 너무 떨어진 곳이라 갈 수가 없었다. 페데리카는 영 내켜하지 않는 눈빛이었지만 많이 지친 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숙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순순히 따라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LUA는 뭔가 허술하고 어수선한 듯한 분위기였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한 곳이었다.
미콜이 오래전부터 한국 음식을 먹고 싶어 했던 것을 알아서 오늘은 우리가 저녁을 만들기로 했다. 불고기덮밥과 채식주의자인 페데리카를 위한 참치덮밥을 만드느라 남편과 나는 도착하자마자 가방만 내려놓고 장을 보고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몹시 배가 고픈 상태라 마음 급하게 서두르느라 더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워낙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만들고 있으니 로비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남편의 현란한 음식 솜씨에 감탄하며 무슨 음식이 완성될 것인지 무척 궁금해했다. 그들 중 몇몇은 한국인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불고기를 알고 있다고 했다.
열 시가 거의 다 되었을 무렵에야 우리는 저녁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남편이 페데리카의 덮밥을 너무 맵게 만든 탓에 언니가 좀 고생하기는 했으나 모두가 행복한 식사를 했다. 재영 씨는 까미노 시작하고 라면 한 번 먹은 것을 제외하고 처음 먹는 한국식 밥이라며 말도 않고 먹었고 미콜은 냄비를 밥으로 닦아가며 알차게 먹었다. 이미 식사를 마쳤지만 우리의 음식에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에게도 불고기를 조금씩 덜어주었다. 그들은 접시를 깨끗이 비우더니 남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한국 식당에서 일을 했었다던 남자는 그리웠던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진심 어린 눈빛으로 몇 번의 감사 인사를 했다. 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추억 속의 음식을 다시금 맛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몹시 감동스러워하였다. 이게 뭐라고... 그의 진심에 나까지 마음이 시큰해질 지경이었다.
언니들은 남편의 머리카락이든 작은 살점이든 떼내어 복제를 해가야겠다며 나에게 꼭 잊지 말고 뭐든 내놓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 남편의 옆에서 제법 많은 양의 파스타를 요리하고 계셨던 할아버지의 표정은 못내 씁쓸해 보였다. 어느새 아저씨와 몇 마디 나누었던 미콜의 설명으로는 제법 요리에 자부심이 강한 할아버지라고 했는데 남편의 요리 때문에 영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이 착잡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정작 자신이 한 불고기덮밥보다 파스타를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의 파스타는 남편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해주었고 그의 감탄에 할아버지도 희미한 웃음을 보이시는 것 같았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 이렇게 다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더 큰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