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베이로아로 가는 길

by 신지명

워낙 늦게 잠든 탓도 있고 뭔가 들뜬 분위기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오랜만에 남편이 대차게 코를 골았던 탓도 있다. 사실 그 이유가 가장 컸다. 새벽녘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온 방 안에 울리고 몇몇 사람들이 한숨을 쉬는 소리에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남편이 코를 골 때 살짝 흔들면 잠시 뒤척이며 멈추기도 하는데 문제는 숙소에 늦게 도착한 바람에 남편과 내가 모두 이 층 침대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나는 자다가 깨서 계단을 내려가 남편을 흔들어 깨우고 다시 올라와 누울 만큼의 노력은 하고 싶지 않았다. 밤새 몇 번을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아하니 1m 정도 떨어진 남편의 침대까지 발을 뻗으면 닿을 것도 같았다. 미안하지만 발끝으로 한 번 툭 건드리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주 큰 착각이었다.

내 침대의 난간을 붙잡고 남편의 침대 쪽으로 발을 쭉 뻗었는데 발이 닿지 않았다. 침대와 침대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었다. 그리고 내 다리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어두운 방 안, 허공에서 추락의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거리를 가늠해보지도 않고 너무 섣불리 무게중심을 옮겼다. 하마터면 제법 높은 이 층에서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떨어질 뻔했다.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잠도 설치고 바보 같은 짓으로 몸의 여기저기도 욱신거렸다. 이래저래 몽롱한 상태로 길을 나섰다.

날씨가 스산한 데다가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아 무척 조용한 하루를 보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도 한없이 평화로웠다. 이제는 생김생김을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 꽃들이며 나무들이 바람에 몸통을 비비는 소리만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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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시간을 산책하듯 조용히 길을 걸었는데 어느 마을 입구에서 개 한 마리가 어두운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짖는 바람에 나는 너무 놀라 공중으로 튀어 오르다시피 했다. 여태껏 만난 녀석들은 짖어봤자 심심하니 좀 놀아달라는 것이거나 불쌍하게 울부짖는 정도였다. 이렇게 공격적으로 짖어대는 녀석은 만난 적이 없었다. 이빨을 허옇게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녀석이 갑자기 달려들까 봐 조마조마하며 재빨리 녀석을 지나쳤다. 너무 놀라 겉옷이 들썩이는 것이 보일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만난 수많은 개들이 이렇게 사납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나 싶었다. 그 녀석들을 내가 어찌 믿고 지나쳤나 싶었다.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탔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젊은 군인들의 무리가 우리 칸을 가득 채웠을 때 그들이 뭔가 험한 짓을 하지 않을까 몇 시간을 조마조마하다가 그들의 순진함에 마음을 놓았었더랬다. 인간이 기본적으로는 사회적인 동물임을, 선한 존재임을 믿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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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금세 마음을 열고 기꺼이 '함께'가 될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무례한 스페인 할아버지들 때문에 한동안 나이 든 스페인 남자들을 경계했던 것처럼 인간에 대한 신뢰는 얇디얇은 것이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인간에 대한 신뢰는 한 줄기만으로는 한 없이 연약하지만 겹겹이 얽히고 얽히면 그것이 견고한 보호막이 되는 누에의 고치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연약한 신뢰들이 끊어지고 다시 생겨나기를 반복하며 지금처럼 견고해졌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안정적인 환경에 머물러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전에 나와 함께 지냈던 아이 중 한 명이 처음 만난 날 나에게 망치를 들고 와 위협을 한 일이 있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DHD 진단을 받았던 그 녀석이 나를 위협한 이유는 자신이 집어던진 명찰을 주우라는 나의 요구 때문이었다. 갑자기 교실을 뛰쳐나가더니 어느 공사판에선가 망치를 찾아들고는 씩씩거리며 달려온 것이었다.
그 뒤로도 그 녀석은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뒤집어엎거나 벽을 주먹으로 치는 등의 공격적인 행동을 종종 보였었다. 고작 초등학교 6학년, 열세 살의 나이였다.
하지만 일 년쯤을 함께 지낸 뒤, 그 녀석은 엉엉 울거나 교실을 뛰쳐나갈지언정 공격적인 행동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 녀석이 보인 새로운 행동은 나의 칭찬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뭔가를 열심히 하면 꼭 나를 쳐다봤고 내가 고개를 끄덕여주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주면 그제야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가곤 했다.
자폐증 진단을 받은 나의 아이들이 보이는 자해행동이나 공격행동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들에게 그 행동들은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세상이 그들에게 보내는 신호가 온통 혼란일 뿐이니 언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언제까지 이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위로받을 수 있는지 아무것도 믿을 수 없어서 보이게 되는 절절한 몸짓인 것이다.
가끔 그 아이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가 있다- '가끔'이라는 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 상황에 몰입해 있는 것이 심적으로 매우 힘들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본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이 나를 비난하고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는데 누구 하나 믿고 의지하여 위로를 받을 곳이 없다. 혹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가득하고 이상한 소리와 자극들만 일렁이는데 누군가 내 몸을 세게 잡아당기거나 갑자기 얼굴을 들이민다.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무런 느낌도 없는데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키며 다그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 작고 어린 녀석들이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겁이 나는 일인지, 혼자서 얼마나 처절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것인지... 상상만으로도 두려워 몸을 움츠리게 된다. 혼자서 그 모든 어려움을 맨 몸으로 견디고 있는 녀석들이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기특한 마음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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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 힘들고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겁이 났다.
그 아이들이 이 세상을 믿을만한 곳이라고 여기게 될 때까지, 안정적으로 마음을 열 때까지는 완전히 안전한 시간과 공간을 내주어야 했다. 그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불안에 떨며 몸을 흔들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지 않도록, 천천히 실을 뽑아 자신의 몸을 단단히 감쌀 수 있을 때까지 방법을 알려주고 믿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 나의 할 일이었다.
하지만 나 조차도 하루하루 허덕이는 주제에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이들을 기다려주기는커녕 아이들을 다그쳐 내가 먼저 그들의 실을 끊어버리고 말까 봐 전전긍긍해야 했다. 아이들의 불안하고 원망스러운 눈빛을 마주하는 것이 겁이 났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에너지를 다시 얻고 용기가 생긴 지금은 돌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나를 지키는 것이 곧 아이들을 지키는 일임을 알았으니 조금은 더 안정적인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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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둑해질 무렵에야 올베이로아 Olbeiroa에 도착했다. 오늘도 역시 공립 알베르게는 다 찼고 미콜과 페데리카가 먼저 도착한 숙소에 함께 묵기로 했다. 도대체 얼마나들 부지런히 출발하는 것인지...
어제의 식사에 대한 답례로 미콜이 저녁을 열심히 만들어주었다. 스산한 날씨에 미콜의 야채수프는 너무나도 훌륭한 저녁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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