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샴페인에 취했던 것인지 사람들이 뿜어낸 열기에 취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어두움 가운데 잠을 깨고는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것인지 인지하는데 잠깐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직은 사람들과 함께 있고 나는 여전히 이 층 침대에 누워있음을 확인하고서야 어제의 축제가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콜, 페데리카와는 오랫동안 부둥켜안고 인사를 나눴다. 언니들의 품은 따뜻했다. 그들을 꽉 끌어안은 팔을 풀기가 쉽지 않았다. 내일 콤포스텔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수차례 다짐했다.
까미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일출다운 일출을 보게 되었지만 버스 시간을 20분이나 착각한 나의 실수로 일출에 환호하며 사진을 찍으며, 동시에 뛰어야 했다.
38일 만에 내 발로 걷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비자연'의 무언가에 몸을 싣는 것인데 우리가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버스는 출발했다. 우리는 두 손을 꼭 붙잡고 눈을 크게 뜬 채 처음 롤러코스터를 타는 아이들처럼 몹시 흥분했다. 긴장도 했다.
움직인다! 풍경이 지나간다!
너무 빠른 속도에 겁이 나서 나는 등을 기대지도 못하고 손잡이를 꽉 잡았다.
그런데... 흥분은 잠시였고 우리가 매일매일 눈길을 주고 때로는 말도 걸었던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가는 창 밖을 보고 있자니 형언할 수 없이 서운함이 밀려왔다.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향을 풍기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들꽃들이며, 하루 종일 지저귀던 새들이 향기도 소리도 없이 찰나에 우리 뒤로 사라져 버렸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 Gil'이 매일 밤 헤밍웨이며 피츠제럴드와 비밀스러운 만남을 즐기던 파리의 뒷골목 식당 '폴리도르 Polidor'에 날이 밝으면 모든 열기가 사라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해진 것처럼 우리도 한바탕 남모를 꿈을 꾸었다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낯선 사람들 틈에 휩쓸려 현실로 나와버린 기분이었다.
우리보다 조금 앞서 숙소를 나섰던 미콜과 페데리카가 아침해를 받으며 바닷가에 서 있다가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힘차게 두 팔을 흔들었다. 아침해를 등지고 서서 까맣게 실루엣만 보이던 그녀들의 손 흔드는 모습이 흡사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처럼 뇌리에 박히고는 뒤로 뒤로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멀미가 났다.
차의 흔들림이 내 발로 걸을 때의 흔들림과 너무 달라서이기도 했고 버스에 함께 탄 여학생들의 화장품 냄새며 까르륵거리는 커다란 소음들이 내 몸을 주무르고 내장을 휘젓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했다.
창 밖의 그곳이 얼마나 부드럽고 편안했는지, 내가 그 안에 얼마나 청량하게 머물러있었는지 말이다.
하루를 꼬박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했지만 걸을 때와는 전혀 다른 힘든 시간이었다.
다행히 버스에서 내리고도 3km 정도 더 걸어 올라가야 '0.00km'의 까미노 비석을 만날 수 있었다. 구역질 몇 번으로 뒤집어진 속을 바로잡고 걷기 시작하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매일매일 입술을 깨물고 안간힘을 써야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고통스러운 버스를 탄 덕에 걸음을 걷는 마지막이 더없는 행복이 되었다.
'0.00km'의 비석이라던지 '까미노의 끝'이라던지가 중요하다거나 감격스럽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미 묵시아에서 우리의 걸음을 끝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온 것은 그저 우리의 시간을, 걸음들을 매듭지어줄 상징적인 무엇이 필요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길이 끝났음을 알고 있지만 두 눈으로 그것을 직접 확인해야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0'라는 숫자가 새겨진 비석은 바다를 뒤에 두고 안내자로서의 소임을 마쳤음을 단호하게 알리고 있었다. 더 이상 우리를 이끄는 화살표도 없고, 조가비가 새겨진 비석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입학한 뒤 갑자기 주어진 자유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누구나 걷는 정해진 길은 나에겐 안전한 장소였고 그 시간을 충분히 만끽하며 내 안에 일어나는 일들에 몰두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받은 공간이었다. 어쩌면 내가 원한 것이 그 안에 모두 있었기 때문에 혹은 내가 그 안에서 어떻게든 행복할 거리를 찾아서 안주하는 소극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 길이 끝나는 것은 나에게 자유라기보다는 두렵고 혼란스러운 짙은 안개에 휩싸이는 것에 가까웠다. 나의 걸음이 이어지는 그 이후의 길에 대한 모든 것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어디로도 발을 내딛지 못하고 멍하니 한자리에 서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마치 비를 피하려다 길을 잃고 헤매던 그 날처럼 말이다.
까미노 위에서 역시 노란색 화살표와 조가비 비석을 따라가는 동안만큼은 앞을 걱정할 필요 없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둘러보았고 때로는 생각에 몰두해 한참을 발끝만 쳐다보고 걷기도 했다. 남편의 말대로 무거운 선택으로부터 해방된 그 시간이 너무나 자유로웠다.
해서... 더 이상의 화살표가 없는 이 길의 끝은 나에겐 자유의 종말과도 같았다. 또다시 안개와 같은 불안이 피어오를까 봐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바다에 아주 가까운 바위에 앉아 긴 여정의 여운이 마음속에 감돌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다 문득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쭈뼛 곤두서고 말았다. 먼 바다의 끝이 그리는 완만한 곡선과 하늘의 광활함이 내가 지구에 발을 딛고 삐죽이 튀어나온 채 우주로 머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도적으로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길을 걷는 동안 종종 '내 두 발로 지구를 굴리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혼자 재밌어했지만 시각적으로 도저히 실감 나도록 상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까미노의 끝에 놓인 바다를 보고 있자니 나는 정말 둥그런 지구의 표면에 붙어있는 것이고 하늘이라고 보여지는 그것은 공간을 덮어버리는 지붕이 아님을, 이미 나의 머리는 우주 공간에 놓여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주로 흩어지지 않고 표면에서 출렁이고 있는 바다며 땅에서 솟아 나와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이 갑자기 너무 신기해 보였다.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임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머리가 멍해졌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두 눈이 아니라 심장에 박힌 또 다른 눈이 번쩍 뜨여 무언가에 압도된 것처럼 가슴께가 뻐근해졌다. 풍경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무엇이었다.
우리는 우주로 흩어져버리지 않을 만큼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는 지구의 힘으로부터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내 땅을 뒤로 밀어내는 위대하고 격렬한 움직임을 통해 이곳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내가 길 위에서 느낀 자유로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해방감을 느꼈다.
정해진 길은 내가 가고 있는 길이고 두려움의 안갯속에는 '둥그런 생명체'위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수많은 길이 있을 뿐이었다. 까미노 위에서 우리는 잘못된 선택으로 길을 잃고 헤매다가도 결국은 가고자 했던 그곳에 도착하고야 만다는 것을 몇 번이고 겪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는 도착하고자 하는 곳이 다른 곳이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다. 비겁하다 할 수도 있고 게으르다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내가 존재하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시간과 공간이 존재할 것이니 그곳은 결국 또 다른 길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않겠는가? 어차피 인생의 시간이 멈추지 않는 이상 그곳이 어디든 나의 길은 끝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걷는 모든 길 위에 내 영혼의 발자국을 새겨 나만의 화살표를 만들어 나가리라 결심했다. 까미노의 화살표가 가리킨 그곳에는 우주가 있었고 이제부터 그 우주로 향하는 나의 화살표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의 자유는 이곳에서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