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로의 출생

by 신지명

두 다리로만 움직이다가 버스와 지하철에 적응을 하고 이제 가장 높은 단계인 비행기 타기에 도전해야 했다. 절차가 복잡한 공항은 언제 와도 늘 긴장되는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몇 번을 다짐하며 체크인 check-in을 하려고 갔는데 한 가족이 뭔가 문제가 있는지 한 명뿐인 직원을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도통 줄이 줄어들지 않아 마음이 초조했으나 그래도 시간이 넉넉하게 도착했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예기치 않은 상황은 누구에나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한 사람에게 불운이 있었다고 해서 나에게는 행운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삼십 분 넘게 기다려 만난 직원은 우리의 여권을 조회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브라질에서 나오는 비행기 티켓이 있는지를 물었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에서 볼리비아로 가는 티켓만 있었다. 우리가 브라질에 있는 포즈 두 이과수 공항으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최종 목적지가 아르헨티나여서 브라질로 입국을 한다는 것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직원은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티켓이 없으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을 온 얼굴로 내비치고 있었다. 우리의 뒤로는 우리가 삼십 분 전에 그 가족을 바라보았던 그 눈빛을 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머릿속이 좀 하얘지기는 했지만 괜찮았다. 침착하자고 나를 달래며 생각했다. 무슨 큰 일이라고... 최악이라고 해봐야 비행기를 못 타는 것뿐이고 돈 얼마 좀 손해 보는 거잖아. 그래... 괜찮아...
멍해진 머리에 피가 좀 돌면서 여행을 떠나기 전 얼핏 어느 블로그에서 이런 일을 겪은 처자 두 명의 일기를 본 것을 떠올렸다. 그들은 아예 인천공항에서부터 발이 묶일 뻔한 위기를 겪었다고 했다. 이미 준비된 미션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뿐이었다. 그 처자들이 했던 대로 우리는 옆으로 비켜서서 얼른 핸드폰으로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로 나가는 아무 티켓이나 구매를 했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압박감이 있으면 머리가 더디게 도는 아둔함 탓에 한국어 사이트에서 예매를 한 것이 또 문제였다. 전자티켓을 보여줬지만 이름과 예매번호가 영문인 것으로는 부족했는 모양이었다. 직원은 예매 화면을 영어로 전환해서 보여줘야 한다며 또 우리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남편의 핸드폰은 배터리가 없어 꺼지기 직전이고 이상하게 내 핸드폰은 인터넷이 되지 않아 로딩 신호만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한 번 일이 꼬이면 뭐든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 이런 얄궂은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으면 '운명론자, 결정론자'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다행히도 나보다는 이런 상황의 압박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남편이 예매사이트 주소의 'kr'을 'en'으로 바꾸는 기지를 발휘해서 핸드폰이 죽기 직전, 영어로 된 예매 화면을 보여줄 수 있었다.
직원은 진작에 출력해 놓은 티켓을 손에 쥐고 우리를 압박하더니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받아 들고 나서야 친절하게 그 화면을 잘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당부를 해주고는 싱긋 웃으며 안전한 여행을 기원해주었다.
급하게 예매를 하느라 비행기 티켓 환불규정을 살피지 못해 몹시 마음이 심란했지만 일단은 서둘러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아직 비행기 출발시간이 사십 분 정도 남아있었지만 가방이 커서 다른 곳에서 따로 가방을 체크인해야 했고 보안검색대에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가이드가 한 분 한 분 챙기며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있어서 시간이 더욱 지체되었다. 게다가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웅성웅성 들리니 괜히 더 어수선한 것만 같았다.
짐이 간단한 내가 먼저 검색대를 나와 남편 짐을 챙겨주러 갔는데 우리의 도시락 가방이 배가 갈린 채 라면이며 오늘 아침 싸놓고 미쳐 못 먹은 핫도그 등이 모두 튀어나와있었다. 그런 건 눈으로 보여줬으니 일단 통과는 했는데 이번엔 우리도 잊고 있었던 보온병을 꺼내더니 위험한 폭발물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손에 들고는 'No!'를 외쳤다. 남편은 재빨리 뚜껑을 열어 제법 남아있는 물을 한 번에 거칠게 들이붓고는 술잔을 털던 모양새로 물병을 머리 위로 탁탁 털어 보여주었다. 그제야 직원은 'ok'를 외쳤다. 남편은 입에서 새어 나와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물을 손등으로 스윽 닦고는 도시락 가방을 주섬주섬 오므렸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난관이 또 다른 난관으로 이어질까봐 마음을 졸이게 되는 것은 인간의 쓸데없는 생존본능이렸다. 오늘 우리에게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게이트가 얼마나 멀지 몰라 일단 뛰었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와중에도 전광판의 수많은 비행기 편명들 중에 파이널 콜 Final call이 깜빡이고 있는 우리의 비행 편 안내가 어찌나 또렷하게 눈에 띄는지...
겅중겅중 앞서 뛰어가는 남편을 보고 소리 내어 웃는 할머니들에게 나는 '일이 그렇게 됐어요...'하는 눈빛만 던져주고는 역시 빠르게 지나쳤다.
한참을 뛰어 도착한 게이트에는 두세 사람이 줄에 남아 막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두 시간 전에는 들어와서 지루하게 기다렸다는 듯한 그 사람들의 표정과 우리가 오지 않았어도 아무 상관없이 절차대로 문을 닫아버렸을 것 같은 직원의 평온한 표정이 우리의 벌렁거리는 심장소리와 거칠게 내뱉는 숨소리를 무심하게 튕겨내고 있었다.
비행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과 공효진이 오키나와 여행을 떠나 차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 흘렀던 음악 'Cross my mind'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 인생이 드라마지. 드라마가 별거냐.

남미는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아직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마드리드에 내려 불과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상파울루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브라질 경찰들이 비행기 티켓과 별도로 여권을 검사하고 있었는데 대충대충 살피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의 여권을 한참 살피고는 동료들에게 '꼬레아 Corea'를 몇 번씩 언급하며 뭐라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엔 또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웬만해서는 잘 느끼지 않는 이방인으로서의 서러움이 올라오려고 했다.
'su' 어쩌고 하는 것을 보니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내 여권을 쥐고 있던 여경은 동료들과 의논을 마치고 브라질에서 나가는 날짜를 물어보았다. 포르투갈 공항에서 급조한 전자티켓 화면- 영어로 번역된 그것!- 을 보여주니 싱긋 웃으며 보내주었다.
사람의 마음을 졸이게 한 것이 미안하면 싱긋 웃게 되는 모양이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긴장이 녹아 피로해진 탓에 정신없이 자다가 얼핏 잠을 깼다. 정신을 좀 차리고 앉아있는데 우리의 뒷줄에 앉은 사람을 중심으로 몇몇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머리가 하얀 나이 든 신사분의 생일을 가족들이 축하해주는 모양이었다.
재밌는 것은... 오늘이 내 생일이다.
비행기에서 생일 축하노래를 듣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인데 그 날이 내 생일인 것은 아마 인생에서 다시없을 마지막 일이기도 할 것 같았다.
세상 밖으로 나오느라 오만상을 찌푸리던 삼십육 년 전의 오늘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거대한 남미대륙으로 첫발을 내딛느라 오만상을 찌푸린 오늘은 기대와 설렘보다는 고되고 서러운 싸움이었다. 아마 오래전 그때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어둡고 좁은 그 길을 혼자서 비집고 나오느라 고되고 서러워서 그리도 우렁차게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들의 축하노래를 들으니 보이지 않는 거대한 누군가가 새로운 세상으로의 첫 발을 내딛느라 수고한 우리에게 특별한 축하를 보내는 것 같아 혼자 흐뭇하게 웃었다.
상파울루에 내리고도 그 가족들은 두 번이나 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브라질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늦은 밤이라 상파울루 밖은 구경도 하지 못했고 공항에서 아침을 맞고서야 포즈 두 이과수 Foz do Iguazu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우리의 가방들도 무사히 남미대륙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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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의 안내소 직원이 친절하게 아르헨티나의 푸에르토 이과수 Puerto Iguazu로 넘어가는 버스 편을 알려주어 버스비만큼의 브라질 헤알 real을 뽑아 공항 밖으로 나섰다.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다른 버스의 기사 아저씨가 우리를 버스 정류소까지 데려다주고는 엄지를 추켜주고 사라졌다.
공항의 검색대에 여느 나라와 달리 수류탄, 총, 다이너마이트 등을 소지할 수 없다는 안내문이 있는 나라 브라질이지만 그렇게 무섭기만 한 곳은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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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번 버스는 스리랑카의 버스를 생각나게 할 만큼 낡아있었다. 버스기사 외에 한 명의 직원이 더 있어서 입구에 앉아 차비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호텔 '보르봉 Borbon'에 도착하면 알려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큰 가방 때문에 좁은 입구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앞 쪽에 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동남아시아처럼 습하고 텁텁한 날씨에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알려줘 내린 호텔 앞에 지붕이 있는 정류장이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남편과 나, 둘 뿐인 정류장에서 유일한 헤알을 잃어버릴까 손에 꼭 쥐고 버스가 오기를 한참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푸에르토 이과수가 적힌 버스는 오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호텔 앞쪽으로 버스가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정류장 뒤로 돌아가 보았다. 정류장의 바로 뒤쪽에는 택시가 늘어서 있고 택시기사들이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고개를 빼꼼히 들이미니 'Taxi?'하고 물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하고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런데 그 기사가 나를 따라오더니 길 건너편을 가리키며 '부스 떼르미널 bus terminal'이라고 말했다.
공항 직원이 길을 건너라는 말은 왜 해주지 않았을까?...
짧은 브라질 방문에 여러 사람의 고마운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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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건너 조금 기다리니 '푸에르토 이과수 Puerto Iguazu'라고 적힌 버스가 와서 타고는 몇 분을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저씨가 무슨 티켓을 주더니 우리를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는 '다음 버스! next bus'하고 떠나버렸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만 내리지?
여하튼 브라질 국경에 내려 출국 도장을 받고 다음 버스를 또 한참 기다렸다. 비는 오고 앉아있을 곳은 마땅치 않아 몸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있었다. 앞뒤로 멘 30kg의 가방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까치발을 들어 출입국사무소의 창틀에 가방을 살짝 얹었다. 어깨가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까미노의 후유증으로 욱신거리는 발은 여전히 무척 아픈 채로 서 있어야 했다.
다음 버스를 타고 또 얼마 안 가서 이번에는 아르헨티나 입국심사를 하느라 내려야 했다. 짐 검사를 하는 직원은 하라는 짐 검사는 안 하고 우리에게 스페인어를 하냐고 묻더니 여기는 아르헨티나인데 자기가 왜 너희 나라 말로 설명을 해야 하냐며 우리를 비아냥거렸다.
'영어도 우리나라 말은 아닌데요...'
순발력 없는 나는 대거리를 할 타이밍을 놓치고는 너 이 자식, 한국 들어올 때 꼭 한국어 배워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만 공허하게 삼켰다.
누군가 나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반응이 너무 느려 통쾌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한 노릇이다. 상대가 나를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는 것에 항시 대비하고 있기에는 내가 너무 온화한 환경에서 삶을 살았다...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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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래전에 예약해두었던 호스텔은 축축하게 비가 오는 날씨가 더해져서 우중충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동네를 둘러보니 어디라도 더 나을 곳이 없어 보였다. 나름 세계적인 관광지로 들어가는 관문과도 같은 마을인데 시설이며 환경이 무척이나 열악했다. 아르헨티나의 큰 도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스페인의 시골마을과 비교해도 너무나 우울한 곳이었다.
피곤한 몸은... 더 피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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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남미에 무사히 입성을 했고 오늘은 내 생일이기도 하니, 형님도 언니도 여비를 후하게 보태주셨겠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며 축하하기로 했다. 뭐니 뭐니 해도 여행의 제 1 수칙은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다.
인터넷에서 급하게 알아보니 '라 다마 후아나 La dama Juana'라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었다는 후기가 있어 고민할 것도 없이 그곳으로 찾아갔다. 아르헨티나 맥주 '킬메스 Quilmes 1890'를 시키고 쵸리조 Bife de Chorizo, 두툼한 등심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아르헨티나 고기가 싸다고 하더니만 그 모든 것이 31페소, 34,000원 정도니 아주 괜찮은 가격이었다. 게다가 스테이크의 질과 조리 실력이 너무나 훌륭해 더 이상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고기와 함께 먹으라고 내어준 치미츄리 chimichurri 소스는 너무 맛있어서 직원에게 이름과 재료를 물어보기까지 했다. 내가 여태껏 먹어본 스테이크 소스 중 가장 고기와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식초와 레몬의 짜릿한 새콤함을 시작으로 으깬 허브 향이 끝까지 코에 맴돌다 사라졌다. 자칫 너무 묵직할 수 있는 고기의 풍미를 산뜻하게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훌륭한 음식을 맛보는 일은 나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행복이다.

2015-05-27-06-18-40_256.JPG 치미츄리 chimichurri 소스
2015-05-27-06-22-37-3790.JPG 쵸리조 Bife de Chorizo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는 동안에 레스토랑 안에 퀸의 'I want to break free'가 흘렀다. 우리가 여행을 결심하던 때,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지쳤을 그때, 어느 술집에선가 듣고는 우리 여행의 주제가로 삼자며 마음에 새겨두었던 노래였다.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배경음악이 딱딱 맞아떨어진다.

남편과 나는 맥주잔을 부딪혔다. 지구의 반대편 이곳의 세계로 뚫고 나오는 길은 비록 고되고 서러웠지만 삼십육 년 전의 그때와 다르게 나는 해방감에 취해 힘껏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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