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쯤 빗소리에 잠을 깼다. 비가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콸콸 쏟아붓고 있었다. 이과수 폭포를 소리로 먼저 만나는 것인가?! '뭐... 비가 오면 그냥 숙소에서 쉬지' 하는 생각에 걱정은 접어두고 다시 눈을 붙였다. 사실 산티아고를 떠난 뒤로 뭐든 무디게 반응하는 경향이 생겼다. 격정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자고 들것도 없었고,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것도 없어진 것 같았다. 모든 에너지를 그곳에 쏟아버리고 왔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무엇을 보고, 하는 것보다 어느 곳엔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해져 버린 것인지 잘 분간이 되지는 않았다.
호스텔에서 주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아침을 먹고도 오전 내내 방에 앉아 다음 행선지 우유니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남미 여행은 너무 어려웠다.
비는 여전히 새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빗소리가 조금 잦아들고 나서야 숙소 근처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나갔다. 그곳에서 12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다시 출국과 입국을 반복하며 삼사십 분을 달려 브라질로 넘어갔다. 오늘은 브라질 쪽의 이과수 폭포를 보기로 했다.
공원의 입구는 비교적 한산했다. 아침에 퍼부은 비 때문인지 한산한 공원 앞 공터가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세계 3대 폭포의 관문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허전해 보였다.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를 보러가기까지는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저 멀리 보이는 산책로를 오래도록 따라 들어가야 했다. 폭포의 크기는 숲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규모가 커져 나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나 나는 폭포보다도 그 주변의 울창한 숲 전체가 풍기는 분위기에 더 홀려버렸다.
저 나무들은, 저 숲은 도대체 얼마나 오래도록 저곳에 있었던 것일까? 얼마나 많은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비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것일까? 내가 알지 못하는, 인류가 알지 못하는 그 시간들로부터 살아왔을 숲의 기운이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이곳이 어찌하여 영화 '미션'의 배경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폭포에서 부서진 물방울이 만들어낸 안개 뒤로 희미하게 비치는 숲을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오보에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새삼스럽게 엔리오 모리꼬네의 천재성이 감탄스러웠다.
가장 큰 폭포, 이름도 무시무시한 '악마의 목구멍 Devil's throat'은 무서운 기세로 위에서 떨어진 물줄기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내 발끝이 물살의 바로 위에 위치하도록 한 뒤 한참을 내려다봤다. 무섭게 요동치는 거센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찌릿찌릿한 전율이 뒤꿈치를 타고 정수리까지 올라왔다. 콰콰 콰콰.... 하는 물소리에 살짝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자칫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얼른 고개를 들고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데 그것을 어찌 생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르헨티나 쪽의 풍경은 이곳보다 훨씬 멋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내일이 무척 기대되었다.
우리는 거센 폭포 소리를 들으며 허기를 좀 채우려고 빵과 음료를 사서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데 몇 분 전 어린 여자아이를 놀라게 하여 떨어진 과자를 잔뜩 주워 먹던 코아티 Coati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 녀석이 어디까지 오려나 싶어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이 놈이 갑자기 내 다리를 짚고 테이블 위로 번쩍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내 손에 들려있던 빵을 뺏으려고 한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의자를 우당탕 쓰러뜨리며 벌떡 일어나 몸을 피했다.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이지만, 그놈이 무척 귀엽게 생기기는 했지만 경고판에 있던 끔찍하게 찢긴 손등 사진을 본 나로서는 미친 듯이 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녀석은 남편이 의자를 탕탕 쳐서 위협을 한 후에야 어슬렁거리며 그 자리를 떠났다. 녀석은 내 빵을 포기한 대신 여자아이가 흘린 과자의 나머지를 태연하게 주워 먹었다. 조금도 겁을 먹지 않은 듯한 그 능청스러운 뒷모습이 무척이나 야속했다.
남미는 역시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나는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폭포에 놀란 마음을 함께 쓸어내린 후에야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공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 또다시 출입국을 한 후에야 푸에르토 이과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실 이런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에 숙소를 잡은 것은 브라질의 살인적인 물가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라고 모든 것이 저렴한 것은 또 아니었다. 저녁거리를 사려고 마트에 들렀는데 가격표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양파 한 알에 600원이 넘고 식빵 한 줄에 6~7,000원씩 했다. 스페인에서 보던 상표인 것을 보니 수입이라고 비싸게 파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자기네들 빵이 싸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작은 빵 한 덩어리가 3~4,000원이나 했다. 밀가루 자체가 비싼 것인가? 어제 들른 레스토랑의 고기와 맥주값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관광객이 주로 이용하는 마트라 비싸게 파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남편과 나는 현지인들이 이용할 법한 마트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날이 어둑어둑해진 데다가 걸어갈수록 허름해지는 건물들의 모양새 때문에 더 이상 먼 곳으로 벗어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골목의 끝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는 돈 몇 푼 아끼자고 무모한 걸음은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최소한의 재료만 사서 파스타를 만들어먹고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저녁식사를 마쳤다.
나는 마을과 숙소의 음산함을 떨치려고 침낭의 지퍼를 단단히 잠그고 코끝까지 그것을 끌어올린 뒤 잠을 청했다. 이곳은 이과수 폭포가 아니었더라면 관광지로는 결코 쉽게 찾아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