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오늘도 흐렸다. 덩달아 나의 기분도 잘 개이지 않았다. 볼리비아의 라파즈 La Paz에서 우유니 Uyuni로 들어가는 오마르 OMAR 버스를 인터넷으로 예매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확인 메일이 오지 않아 몹시 심란한 상태였다. 미국 일정도 아직 확정이 되지 않아 여러 가지로 골치가 아팠다.
흠.. 이럴 땐 잠시 접어두고 잊어버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버스회사에 이메일만 보내 놓고 일단 오늘에 집중하기로 했다.
역시나 부실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버스터미널로 나갔다. 호스텔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위치만큼은 최적이었다.
거리는 좀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왜 아르헨티나 쪽 공원으로 가는 버스표가 더 비싼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버스표만 왕복 100페소, 약 만 원이었다- 브라질 쪽 공원까지는 왕복 80페소였다.-. 거기에 입장료가 260페소, 보트 투어가 270페소로 인당 육만 원 가까이 들었다. 관광지에서 이 정도 요금을 지불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여태껏 이렇다 할 '입장료'를 지불한 여행을 한 것이 아니어서 매우 큰 지출을 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과수 폭포는...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브라질에서 본 폭포는 예고편 정도였다!
'악마의 목구멍'의 본편은 어마어마했다!
공원 입구에서 기차를 타고 한참을 올라간 뒤에도 또 한참을 산책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본 폭포는 실로 엄청난 크기였다. 거대한 물줄기들이 마치 하늘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처럼 화려하게 부서져 내렸다.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쏟아져내리고 그 물줄기들이 서로 부딪히며 부서지는 모습이 그곳에서만 시간이 다르게,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눈은 분명 그것을 보고 있는데 나의 머리는 처음 경험하는 그 모습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현실감을 느끼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 결국은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한 것 같다.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저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도대체 어디서 나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신비로울 따름이었다. 저 물이 하늘로 솟아 우주로 흩어지지 않고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당연한 이치겠지만 그 '당연한' 이치가 놀라웠다.
어느 정도의 들고 나는 것은 있겠지만 대부분의 생명체와 물질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이 지구라는 거대한 '구'에 머물러 이렇게 거세게 살아내고 또 어딘가로 사라지고를 반복한다는 것은 분명히 놀라운 일이었다. 수많은 생명이 사그라들고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기를 반복하며 지구의 거대한 질량이 일정 정도 유지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생명의 변태는 있을지언정 영원한 소멸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활은 이러한 생명체의 영원성에 대한 가르침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결국 모든 생명은 거대한 생명의 공간에서 돌고도는 지체들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생각들이 폭포와 함께 쏟아져내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물줄기와 함께 휩쓸려 내려갈 것만 같았다.
공원은 '악마의 목구멍'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석구석 크고 작은 폭포와 숲들이 끊임없이 나타나 볼거리가 아주 많았다. 처음 보는 새며 원숭이도 야생 그대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이미 사람 손을 타서 과자 같은 먹거리로 연명하고 사진 모델이 되어주는 삶을 살고는 있지만 어쨌든 갇혀 사는 녀석들은 아니니 야생은 야생이었다.
동물들도 국민성을 따르는 것인지 좀 사나웠던 브라질 공원의 코아티와 달리 이곳의 녀석들은 순하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했다. 어디서든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나면 달려가 두 발로 서서 앞 발을 다소곳이 모으고는 쳐다보기 일쑤였다. 물론 이 놈들도 먹을 것을 빼앗기면 무섭게 돌변하기는 하지만 어제 그 녀석처럼 먼저 달려들지는 않았다.
나는 공원의 구석구석을 구경하다가 어느 폭포의 줄기 앞에 멈춰 섰는데 폭포의 옆으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들이 보여서였다.
거리가 좀 멀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나는 그것들이 새인 줄 알아보았다. 물줄기가 쏟아져내리며 부딪히는 바위의 바로 옆 작은 틈에 예닐곱 마리의 새가 몸을 부대끼며 붙어있었다. 거센 물줄기는 피했다고 해도 제법 많은 양의 물이 튀어 녀석들의 몸을 쉴 새 없이 적시고 있었다. 새들도 연신 날개를 털어 물기를 날렸고 물줄기에서 가장 먼 쪽의 자리로 돌아가며 작은 몸을 옮기고 있었다.
왜 하필 저 위험하고 편하지 않은 곳에 둥지를 틀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천적을 피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은 것이 아닌가 추측만 해보았다.
남편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다... 저런 녀석들도 살겠다고 저렇게 애를 쓰는데..."
정말이지 그래 보였다. 가녀린 몸뚱이로 위험한 둥지에 매달려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는 녀석들의 모습은 너무나 처절했다. 무엇이 그 녀석들을 그렇게 악착같이 살게 만들었는지... 생명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었다.
나는 도저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 경이로운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그 녀석들의 몸짓은 거대한 폭포수만큼이나 강인해 보였다.
폭포의 바로 아래까지 들어갔다가 나오는 보트 투어는 생각만큼 짜릿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흐린 날씨 때문에 너무너무 추웠고 폭포수를 맞느라 정신이 없어서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보트를 신나게 태워준 것도 아니었다.
안 타면 아쉽지만 탄다고 특별히 대단하지는 않았던 보트 투어를 마지막으로 공원을 나섰다.
에라~기분이다!
오늘 저녁은 또 두툼한 소고기, 쵸리조를 먹었다. 고기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남편이 모처럼 마음에 쏙 들게 레어 rare를 구워낸 식당을 찾아낸 것을 너무 만족스러워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당에 또 언제 오나 싶은 마음에 호기를 부렸다. 이런 호기가 여행의 참맛이지 않겠는가?!
뭐든 두 번째는 다소 실망스럽기 마련인데 리스본의 타르트도 그렇고 이곳도 그렇고 두 번째가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진 것은 정말 맛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아니면 그저께는 험난한 여정에 지쳐 미각이 좀 둔했던 탓일까? 여하튼 치미츄리에 찍어 한 입 가득 넣은 고기를 우물거리며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만족감이 이과수 폭포처럼 콰콰콰콰 쏟아져내렸다.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환상적인 저녁식사를 마친 뒤 숙소로 돌아오니 버스 티켓이 메일로 잘 들어와 있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좀 쉬며 기다리는 것이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