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이과수

by 신지명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빛났다. 아르헨티나에 있는 내내 찌뿌둥하더니 떠나는 날 이렇게 화창해지면 너무 약이 오르지 않겠는가?!

짐을 싸서 호스텔에 맡기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개국이 나뉘는 곳을 보겠다고 나섰지만 우리는 어느새 이과수 폭포로 가는 버스에 올라있었다. 도저히 약이 올라서 그냥 갈 수가 없었다. 플리트비체에서 날씨가 풍경의 8할은 차지한다는 사실을 경험한터라 파란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이과수 폭포를 내 눈으로 봐야 했다. 빠듯한 시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돈도...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결국 넘을 수 있는 고민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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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길마저 어제와는 전혀 다른 곳인 것만 같았다. 우리는 다른 곳은 들르지도 않고 곧장 악마의 목구멍까지 뛰어올라갔다. 새며 원숭이를 찍겠다고 중간중간 인파가 몰려 있어서 마음이 몹시 다급했다.

앞만 보고 달려 도착한 악마의 목구멍은 어제와 분명 다른 풍경이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쏟아져내리는 폭포는 물색깔부터가 더 강렬했다. 파란 하늘색과 누런 물줄기가 대비되어 현세의 장소가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다시 보아도, 아니 두 번째 본 것이 더더욱 감탄스러운 폭포의 모습에 푹 빠져 한참을 서서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가끔 그곳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정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그런 마음을 먹을 만큼 폭포의 위세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 풍경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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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해가 비치면 무지개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것까지는 욕심이었는 모양이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져서 마음을 접고 아쉽게 돌아섰는데 아래쪽 다른 폭포에서 작게나마 무지개가 비친 것을 보았다. 시간이 빠듯함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정거리는 나에게 '옛다 무지개! 이제 그만 가야지'하고 던져준 작은 선물인 것 같아서 괜한 웃음이 비실비실 세어나왔다.
돈이야 뭐... 다른 곳에서 더 아끼기로 하고... 어제보다 더 멋진 이과수 폭포를 본 것은 잘 한 일이었다.

IMG_9186.JPG 옛다!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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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서 공항으로 가는 미니버스를 예약해줬는데 네 시 반이 되도록 버스가 오지 않았다. 어제 미니버스를 예약할 때 비행기 출발 두 시간 전에는 데리러 올 수가 없다고 했었다. 원하는 시간에 가려면 택시를 부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티켓을 다시 보니 여섯 시가 아니라 다섯 시 비행기였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버스를 일찍 불러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는 뜨는 비행기가 없다며 굳이 네 시에 온다고 했다.
공항은 준비를 한다고 해도 언제나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고 남미로 넘어오며 한 차례 고생을 한 터라 거짓말까지 하며 서둘러 가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호스텔 주인도 내심 불안했는지 내 눈치를 보더니 전화기를 내밀고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주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대신 전화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버스회사 직원이 영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여자는 스페인어로 계속 말을 쏟아냈고 영어를 요청해도 소용이 없었다. 호스텔 주인을 다시 불러 '이 여자 영어 못하는데?!'라고 도움을 청했지만 자기는 버스회사와 손님 사이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제기랄! 어쩌라고!
전화를 일단 끊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버스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영 팍팍하고 뭔가 모르게 불쾌했다. 엊그제 몹시 친절하게 환전해준 여행사 사장도 실은 형편없는 환율로 우리 돈을 떼어먹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주먹을 쥐어야 했었다.

물론 이 한 곳만으로 아르헨티나 전체를 판단할 수야 없지만 푸에르토 이과수, 이곳은 분명 빨리 떠나고 싶은 곳이었다.
다른 호스텔 곳곳을 들러 손님을 가득 채운 미니버스는 -이러려고 시간을 정해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 다섯 시가 거의 다 되어 공항에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승객이 얼마 없는 작은 공항인 데다가 국내선은 절차도 간단해서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을 누가 설명도 해주지 않았으니 알리가 있나...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탓이지 누구를 탓하겠냐만은...
대부분 여행길에 들르는 공항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용하는 곳이기 마련인지라 늘 어렵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내려 볼리비아 산타크루즈로 들어가는 비행기로 갈아타는 검색대에서 나는 70여 일을 함께 한 포크와 젓가락을 뺏기고 말았다. 항상 부치는 가방에 넣어뒀었는데 오늘 아침에 짐을 다 싼 뒤 라면 끓여먹는다고 꺼내 쓰고는 손가방에 넣은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다. 직원들이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으니 할 일을 한 것이지만 고작 식기에 불과한 나의 물건을 빼앗기고 나니 '이놈의 아르헨티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수류탄이나 총도 아니고... 다이너마이트도 아닌데... 도끼나 칼도 아닌데...- 남미의 검색대에서 소지를 금지시키는 품목들이다...-
입국심사 직원도, 호스텔 주인도, 미니버스 기사도, 그리고 이곳 직원도 모두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자기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뭔지 모를 불친절과 불쾌감이 맴돌았던 아르헨티나였다. 남편 말대로 내 실수나 부족함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이곳이 어쩐지 팍팍하고 매정한 것만 같아 불편했던 것 같다. 좀 덮어주고 채워주어도 좋으련만... 유난히 센 자존심에 고단한 삶이 더해져서 풍기는 냉랭함이었던 것도 같다.
이제 아르헨티나를 벗어난다. 언젠가 아르헨티나를 다시 오게 되면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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