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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Aug 29. 2021

쇼팽

2021.07.27

오늘 나는 조금 특별한 환자를 맡게 되었다.


할머니는 피아노를 전공하셨다고 했다.


80세가 넘는 할머니가 피아노 전공이라고 하니 신기했다.


성인중환자실에는 아무래도 노인환자가 많다. 매일같이 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지만 가끔 그런 분들이 있다. 저 할머니의, 저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상상에 빠져들게 만드는 사람.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노인에게는 그들 각자의 10대와 20대, 30대, 그리고 40대… 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온몸이 아파서 중환자실에 누워있지만, 때론 팔다리가 억제대로 묶여있기도 하고 몸에 여러 개의 관이 박혀 있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도 두 다리로 힘차게 뛰고, 열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시절이 있었겠지.


문득 그런 센치한 마음이 들어서 할머니는 어떤 노래를 제일 좋아하셨느냐고 물어봤다.


할머니는 쇼팽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내 핸드폰으로 쇼팽을 검색해서 틀어드렸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될 수도 있으니 작은 소리로 틀어서 할머니 귀 옆에 살짝 놓아드렸다.


할머니는 노래가 나올 때 작은 탄식과 함께 곡명을 얘기하시며 해맑게 좋아하셨다. 나는 클래식은 잘 몰라서 그냥 검색해서 나온 곡들을 인기순으로 틀어드렸더니 제일 처음 재생된 노래는 나도 익히 들어본 곡이었다. 아 이게 쇼팽 노래구나. 노래가 좋다,가 아니라 참 아름답다.. 는 생각이 들었다.


요 며칠 병동이 너무 바빠서 나도 늘 바쁘고 힘들었다. 그래서 쉬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었는데, 막상 다음날이 쉬는 날인 것이 아쉬웠다.


할머니는 다른 병동으로 전동 예정이라 내가 다시 출근했을 때 할머니는 안 계실 것 같았다. 이게 할머니를 보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쉬웠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주인공 로즈가 할머니가 되어 젊은 시절을 추억하던 것처럼, 쇼팽을 좋아하는 할머니의 기억 속에도 뭔가 낭만적인 기억들이 아주 많을 것 같았다.


할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겠지.


이브닝 근무가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생전 듣지도 않던 쇼팽 노래를 들었다. 해가 진지 오래되어서인지 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귓가에 흘러나오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 때문이었을까. 어둡고 텅 빈 도로나 길 건너 마로니에 공원, 붉은 건물과 가로수들이 뭔가 사연 있어 보이고 괜히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천장을 바라보며 쇼팽을 듣고 있자니 뭔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사실 뒤로 갈수록 점점 모르는 노래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노래가 다 아름답고 그래서 기분이 좋다.


쇼팽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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