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이라는 이름의 균열

사건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관계의 방식

by 소망안고 단심

TV 뉴스와 인터넷,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는 P의 사건을 보며
처음에는 솔직히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최근 아이돌을 꿈꾸는 딸아이를 위해
화·목·토, 왕복 세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를 오가고 있다.
아이의 연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하루에 여섯 시간을 넘게 그곳에서 보낸다.

얼마 전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오는 길만 다섯 시간 반이 걸렸다.
차 안에서 느낀 공포감 때문이었을까.
눈이 온 어제와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딸아이와 함께 서울 혜화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안은 복잡했고
왕복 세 시간이 넘는 이동은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까지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때 문득,
언론을 뜨겁게 달군 P의 사건이 떠올랐다.

사건 자체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왜, 관계 안에서
그들은 그렇게 좋지 않은 끝을 맞이해야 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어떤 개인을 위해
나의 일정과 생활을 뒤로 미루고
행선지를 맞추는 시간들 속에서
마음이 늘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딸아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유난히 예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남이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가 따르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예의, 그리고 신뢰다.

타인이
오로지 나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삶을 조정한다는 것은
대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희생이 전제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희생을 받는 사람의 마음과 언행은
어떠해야 할까.

나는 지금 P의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을 넘어,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
관계라는 이름 아래
희생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있을 뿐이다.

가까이는 가족 안에서의 남편의 희생,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배려와 양보,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내가 믿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희생 앞에서
나는 과연 어떤 마음과 모습으로 서 있는가.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사랑일 수는 있어도
존중 없이 받아들여지는 순간
그때부터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긴다.

관계의 끝을 결정짓는 것은
얼마나 많이 해주었느냐가 아니라
그 희생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였느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