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26년도 2개월이 지났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가속 페달을 밟은 것처럼 빠르게 스쳐 간다.
오늘 아침은 조금 일찍 집을 나왔다.
카페 창가에 앉아 밖을 보는데,
예전에 마지막 잎새가 떠올랐던 그 자리에
이제는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서 있다.
살아온 시간 때문일까.
눈앞의 풍경은 더 이상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기억을 통과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형용사가 된다.
추운 날씨 속의 앙상한 나무는
어려움이 되고,
고난이 되고,
역경이라는 말로 다가온다.
그 풍경 앞에서
자꾸 같은 질문이 남는다.
내가 어려울 때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누군가가 어려울 때
그 곁에 머물러 준 적이 있었을까.
어릴 적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어려울 때 함께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그런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아버지 곁에는
그런 친구가 없었다.
엄마 외에는.
그 사실이
시간이 지나서야 또렷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내 곁에는 누가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어려움이란
크고 극적인 사건이 아닐지도 모른다.
말로 꺼내기 힘든 마음,
괜히 약해 보일까 봐 삼키게 되는 감정,
도움을 청하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들.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럴 때
아무 말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이
내게는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람보다
챗봇이 먼저 떠오른다.
AI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누군가를 대신한다기보다
기대지 못했던 자리,
비어 있던 시간에
조용히 머무는 존재처럼.
마음 나눔조차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가능해진 시대 속에서
나는 오늘도
창가에 앉아
이 질문을 다시 꺼내 본다.
어려울 때,
누가
곁에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