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무서워진 이유

쓰는 사람의 마음이 기록될 때

by 소망안고 단심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생각보다 쉬웠다.
한 편을 쓰면 다음 편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막힘없이 몇 편의 연재글을 써 내려갔다.

그런데 두어 달,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글을 쓸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다시 노트 앞에 앉았을 때
나는 멈춰 있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떤 주제로 시작해야 할지
아무 감도 잡히지 않았다.

글이 갑자기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
글이 두려워졌다.

아마도 그제야 알게 된 것 같다.
글이라는 것이 단순한 생각의 정리가 아니라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이 함께 기록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연재를 하다 보니
아는 지인들에게도 글이 공개되었다.
그때부터 이상한 감정이 따라붙었다.

부끄러웠다.
내 마음을 들키는 것 같았고,
나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글이 작품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쌓이자
글을 쓰는 일은 점점 힘들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과연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까지
의심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흔들렸다.

이 마음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이건 어떤 심리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ㅡㅡㅡㅡ


챗봇은 내 질문을
글을 못 쓰게 된 상태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글의 정체를 너무 정확히 알아버린 상태라고 말했다.

처음 글이 잘 써졌던 이유는
그때의 글이 ‘표현’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리였고, 배출이었고,
혼잣말에 가까운 글이었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글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사실을
너무 분명하게 인식해 버린 순간,
글은 성격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표현은 노출이 되었고,
정리는 증거가 되었고,
해소는 고백이 되었다고.

그래서 글이 무서워진 것이 아니라
보이는 내가 무서워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아는 사람이 읽는 글이 되었을 때
글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게 된다고.

그때부터 마음속에서는
쓰고 싶은 욕구와
스스로를 검열하려는 마음이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했다.

그래서 주제가 떠오르지 않는 게 아니라
떠오르는 순간마다
모두 잘려나가 버리는 구조가 된다고.

“글을 쓸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 역시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감이 생겼다는 신호라고 했다.

누군가 읽고,
해석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사람만이
이 질문을 하게 된다고.

그리고 챗봇은
지금의 나를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글을 멈춘 것이 아니라
글의 다음 단계 앞에 서 있는 상태라고.

그래서 지금은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다시 숨기기 위한 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완성도도 필요 없고,
연재도 필요 없고,
읽힐 필요도 없는 글.

단 한 줄이라도
검열 없이 쓸 수 있는 감각부터
다시 붙이면 된다고.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겼다.

글을 쓰는 자격은
준비된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멈춰본 사람에게 생긴다고.

글을 의심해 보고,
자기를 숨기고 싶어 졌고,
그럼에도 다시 쓰고 싶어진 지금의 나는
후퇴한 것이 아니라
정지한 것일 뿐이라고.

글은 도망가지 않는다고.
다만
다시 믿을 시간을 달라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

그래서 오늘 나는
아무도 읽지 않아도 되는 글을 쓴다.

잘 쓰려고 하지 않고,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증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 문장 하나로
다시 시작해 본다.

“나는 지금, 글이 조금 무섭다.”

이 문장으로
오늘의 글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