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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끊긴 관계에서 배운 '다름'의 실체

우리는 모두 다른 속도로 산다

by 소망안고 단심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바라며 살아가지만,
행복은 관계 속에서 가장 먼저 흔들린다.
서로의 마음이 같지 않고,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람을 만났다.
함께 일하게 된 A였다.

A는 말이 느렸다.
단어를 꺼낼 때마다 조금씩 숨을 고르는 사람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일정한 톤으로 이어지는 말투였다.
처음엔 그저 성향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빠른 사람이 있고, 느린 사람이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느림 뒤에
단순한 호흡보다 더 복잡한 결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이 생겨
나는 먼저 상황을 처리하고 빠르게 동료에게 전달했다.
A도 자연히 파악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후에 A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왜 나를 거치지 않고 상사에게 직접 보고했냐”는 말이었다.

대화는 그 순간부터 닫힌 문 앞처럼 일방적으로 흘렀다.
나는 업무 특성상 빠른 공유가 필요했다고 설명했지만
A는 내 말 전체를 ‘무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설명은 설명이 아니라 공격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그 후 A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평소 내 자리 근처를 들르던 사람이
며칠 동안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임 자리에서도 시선은 바닥에 고정돼 있었고,
내가 인사를 건네도 공기가 벽처럼 서 있었다.

며칠 뒤 회의 시간,
A는 이미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나는 결국 직접 물었다.

“혹시 내가 기분 나쁘게 한 게 있었냐”라고.

A는
내가 인사를 하지 않은 순간들,
A가 맡긴 업무에 대해 내가 “그건 어렵다”라고 했던 말을 꺼냈다.
그 말들은 모두 A에게 상처로 저장되어 있었다.

나는 다시 상황의 맥락을 설명했지만
A에게 중요한 것은 맥락이 아니라 감정의 기억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 갈등은 사실이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 ‘자존감’, ‘감정’의 문제였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내면은 늘 긴장 상태인 사람.
타인의 의견을 ‘조언’이 아니라
‘자기 권위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소통이 아니라 감정의 파도에 먼저 흔들리는 사람.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관계는 더 이어지지 않게 하자.
업무에서도 불필요한 연결을 만들지 말자.”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걷는다.
내가 아무리 잘하려 해도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관계는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완벽히 믿을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미워할 존재도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내가 지켜야 할 마음을 지키는 것.
그게 관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이다.

글로 오늘의 마음을 다시 정리해 본다.
복잡했던 감정이 언어로 모양을 갖추는 순간,
나는 조금 숨을 돌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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