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병이라는 공포와의 싸움
다행히도 아빠는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
재활 치료가 필요해 가까운 병원에 다시 입원해 훈련을 시작했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
젊은 나이에 희귀 유전병을 알게 된 아빠는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말 앞에 무너졌고,
그 무너짐은 점점 분노로, 통제되지 않는 감정으로 이어졌어.
처음엔 엄마도 이해할 수 없었지.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그래, 너 잘났어. 내가 이렇게 되니까 이제 날 무시하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깊이 상처받았어.
모두가 잠든 밤,
엄마는 베개를 꼭 껴안은 채 눈물을 삼키곤 했어.
믿고 의지하던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울며 기도를 하기도 하면서
엄마는 홀로 슬픔을 참아야 했지
그런 엄마를 버티게 해 준 건
늘 해맑게 웃어주는 우리 딸이었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엄마는 울음을 멈출 수 없네.
얼마 전,
엄마가 책을 써보고 싶다고 하자
네가 말했지.
“엄마의 이야기를 글로 써봐.”
처음엔 겁이 났어.
글로 쓰면, 이 아픔이 다시 살아나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마음 깊은 곳의 고통은 글로 흘려보내야
비로소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는 걸.
그리고 그 안의 미움도, 글을 통해 조금씩 용서로 바뀐다는 걸.
딸,
엄마는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꺼낼 수 있어서 고맙고,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너라서 참 좋아.
아직도 엄마 귀에는
어릴 적 네가 부르던 “엄마! 엄마!”
그 목소리가 들려.
그 작고 해맑던 웃음과 목소리가
엄마를 지금까지 지탱해 줬어.
그리고 이제야 조금 깨닫게 되었어.
아빠의 분노는 엄마만 힘들게 한 것이 아니었고
우리 딸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 자신에게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을 거야.
젊은 나이에 겪은 뇌출혈과 뇌경색,
그리고 반복되는 유전병의 그림자.
언제 어디서 또다시 쓰러질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아빠는 말하지 못한 싸움을 계속 견뎌왔던 거야.
말은 거칠었지만,
어쩌면 지금까지 아빠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딸,
바로 너라는 존재 덕분일지도 몰라.
그리고 그동안
엄마와 너에게 줬던 상처들에 대해
아빠는 속으로 많이 미안해하고 있을 거야.
딸이 싫다 해도 자꾸 장난을 거는 건,
어쩌면 미안함의 표현이겠지.
딸,
인생에는 그런 시간이 있더라.
지나갈 때는 너무 아프지만,
나중에는 추억이 되는 시간.
그 추억들이 쌓여 삶이 되고,
그 삶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만나고,
함께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
아직 끝나지 않은
‘희귀 유전병’이라는 그늘이 우리 가족을 붙잡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는
부정보다는 긍정으로,
불평보다는 감사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자.
그래야 언젠가
“그래도 우리 가족, 행복했지.”
웃으며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거야.
지금 이 순간,
우리 딸은 댄스 연습에 한창이겠지?
엄마 눈앞에는
음악에 맞춰 땀 흘리며 춤추는 네 모습이 생생히 그려져.
그리고 언젠가 그 꿈을 이룬 네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그 옆에서 너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빠의 웃음까지도
엄마는 충분히 그릴 수 있어.
사랑한다, 우리 딸.
그리고… 고맙고 소중한, 우리 가족의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