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아터지는 상처
“엄마!, 어제 오빠 영화 봤는데 너무 재미있대.”
그 말을 듣는 순간, 엄마는 속으로 생각했단다.
‘아, 우리 딸이랑 아들이랑 오늘도 연락을 했구나. 서로 챙겨주니 고맙다, 둘 다…’
기억나니, 딸?
오빠가 독립을 위해 집을 나가던 날,
너는 정말 서럽게 울었어.
무엇 하나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밀려오듯,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엉엉 울던 너를
엄마는 잊을 수 없어.
그동안 엄마는 일부러 아픈 기억을 꺼내지 않았어.
늘 아빠의 병 이야기만 했지.
하지만 지금 이렇게 너에게 글을 쓰는 건
우리 가족 안에 남아 있는, 말하지 못한 상처들을 꺼내어
조금씩이라도 치유하고 싶어서야.
우린 재혼 가정이었고,
솔직히 참 많이 아팠지.
서로를 상처 내고, 또 상처받고…
그런데 아직,
우린 진심으로 화해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만큼 쌓여 있던 미움과 오해,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 엄마는 느껴.
그래서 이 이야기를 꺼내려해.
아빠, 엄마, 오빠, 그리고 너.
우리 모두가 서로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조금씩이라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빠가 집을 나가게 된 건
아빠의 병이 심각해지고,
분노조절이 어려워졌던 시기였지.
학교를 막 졸업한 오빠는
생각처럼 쉽게 직장을 구할 수 없었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어.
그런데 그 시절 아빠는 극도로 예민했고,
오빠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걸
마치 오빠의 게으름이나 무책임으로 여기곤 했지.
아빠의 눈치를 보느라
오빠는 방 밖으로 나오는 것도 조심스러워했고,
그 모습조차 아빠는 불만스럽게 바라봤어.
아빠가 한 번 오빠를 미워하기 시작하자,
오빠의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아.
그리고 어느 날 결국…
아빠는 오빠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퍼부었고,
참다못한 오빠가 결국 아빠에게 대들고 말았지.
“너, 당장 이 집에서 나가!”
아빠의 이 말 한마디에…
그날 오빠는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엄마 없는 집에서
아빠에 의해 내쫓기고 말았지.
갈 곳 없던 오빠는
그날 밤, 터미널 의자에서 쪽잠을 자고
PC방에서 시간을 때우며 버텼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엄마는 무너지는 심정이었어.
그리고 지금도,
그날의 죄책감이
엄마 마음 한구석에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 있어.
한동안은 아빠를 도무지 용서할 수 없었어.
딸,
엄마는 믿어.
우리 가족의 진짜 회복은
이렇게 아픈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그저 덮어두기엔 너무 깊은 상처였고,
상처는 덮는다고 없어지지 않더라.
아물지 않은 상처는 결국 곪아서
다른 곳까지 상하게 하니까.
우리 가족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그냥 묻어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꺼내기 어렵고 아픈 이야기지만
서로의 상처를 꺼내어 함께 치유해야 하지 않을까?
그날이
가장 깊은 상처로 남은 건
오빠… 그리고 너라고 생각해.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오빠를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고,
오빠를 가장 사랑했던 너에게
그렇게 떠나보내는 아픔을 주어 더 미안해.
하지만,
우리는 그날을 통해
조금은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너와 오빠는
서로를 더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더 챙기는 계기가 되었지.
딸,
언젠가 우리가
그날의 아픔을 조심스레 꺼내며
엄마와 오빠, 그리고 너
그 시절 셋만의 쌓아 놓았던 비밀의 일들을 웃으며 회상할 날이 오리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