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 개발자
내가 신입사원 때 만나 본 최고 레벨의 연구원 두 분이 있다. 그중 한 분이 이번 챕터의 주인공이신 K수석님이다. 내년에 정년퇴직을 앞두신 K수석님은 기구 파트시다. 이 정도의 나이와 경력이시면 관리자이실 것 같지만 이 분은 아직도 연구를 하신다. 내가 신입사원 때는 관리자셨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2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탐구하신다.
기구 파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Job소개 강의 전에 인터뷰를 부탁드렸다. 커피 한잔에 쉽게 응해주신 K수석님. 아마 후배가 물어보니 재밌으셨나 보다. 나이와는 다르게 생각이 젊으시고 나보다 뱃살도 안 나오셨다. 후배에게 덕담하듯이 솔직하고 과감 없이 얘기해 주셨다. 내년이 은퇴이신데 뭐가 거리낌이 있으실까.
보통 HW팀 하면 첫 번째 강의 때 설명한 회로 파트와 이번 시간에 설명할 기구 파트로 나뉜다. 내가 경험한 기구 파트는 제품 케이스와 부품을 설계하고, 깎고, 조립한다. 그리고 설계한 대로 나왔는지 확인하고, 신뢰성은 만족하는지 테스트를 한다. 물론 제품 만들기 전 설계한 대로 만들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도 진행한다.
기구 파트에게 경험은 중요하다. 카이스트 박사 출신의 기구 엔지니어가 제품을 설계하였다고 치자. 그런데 그 설계자에게 제품이 나오면 조립도 시켜봐야 한다. 샘플 수백 개를 끌로 다듬고, 본드질을 해가며. 그래야 설계가 제대로 되었는지, 잘 안되었다면 어떻게 설계해야 더 완성도가 높아지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은 3D 프린터가 있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빠르게 만들어 볼 수 있다. 기구물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금형을 뜨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 하지만 3D 프린터를 사용하면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요즘은 플라스틱뿐만이 아니라 금속도 3D프린팅이 가능하다. 그래서 단순히 샘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고장 나거나 단종된 기구물 제작 용도로도 사용된다.
또 적정기술의 일환으로 아프리카나 제3세계에서 원하는 형상의 기구물 제작을 위해 많이 사용된다. 항공우주 분야에서는 우주인들이 필요한 물건을 자급자족 하기 위한 솔루션으로도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기구물 설계 및 제작에 관한 업무가 기구 파트의 역할이다. 내가 아는 단계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K수석님은 말씀하셨다. 이게 다가 아니라고. 이건 일부분일 뿐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고 한다. 자동차, 가전제품, 항공우주, 특히 요즘에는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센서와 엑츄에이터 등 동작 특성 및 원리에 대해 연구해야 된다고 한다. 기구 엔지니어 중에 SW를 잘하시는 분들이 많다. 테스트 용도로 직접 코딩해서 동작시키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동작 원리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 즉, 한 제품에 대해 전체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구 파트 출신 중에 리더 및 관리자가 많다. 전체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 분야 뿐만이 아닌 제품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포스도 있다. 포스를 모르시는 분은 스타워즈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SW처럼 혼자 하는 일이 아닌 여러 명이 현장에서 협업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리더십도 강하다.
K수석님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셨다. 자기 분야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제품 전체의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이건 기구 파트뿐만이 아닌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회사 생활에서 성공의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