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아임 파인 땡큐 앤유?
*사용된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애런은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미국인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것만 안 채 지원을 들어갔다.
“엄.. 애런~ 디스 이즈 백! 코리안 네임 이즈 가방!”
세상에나 낯 뜨거운 영어실력이었다. 상대가 1학년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첫날부터 되지도 않는 영어를 하느라 진땀을 뺐다. 민망스러운 영어를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는데 애런의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상황과 맞지 않는 문장들을 내뱉듯이 말했다.
“Number! One! Two! Puppy! 희숙! 희숙teacher!”
영어에 대한 나의 무지함 인가 싶다 가도 애런이 말하는 단어들을 자세히 들어보면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의 나열이었다. 그래도 첫날 알려준 나의 이름은 잘 기억하며 만날 때마다 “희숙! 희숙!”을 외쳤다.
애런에게서 보이는 모습들은 인터넷으로 찾아본 자폐아의 증상과 비슷해 보였다. 자폐가 의심되는데 왜 선생님은 가만히 계시지? 의문스러웠다. 다음 날 애런 가방 속 ‘발달장애 검사 신청서’를 발견 한 뒤 담임선생님이 모르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 내가 오만하게 느껴졌다.
애런의 몸에선 코를 찌르는 냄새가 진동을 했고 머리는 항상 떡이 진 상태였다. 어느 날은 탈피를 시작한 도마뱀처럼 두피에 말도 안 되게 각질이 일어나 있었다. ‘이건 부모의 아동학대다!’라는 확신이 들면서 담임선생님께 말을 해야 하나, 냅다 신고부터 해야 하나 무수한 생각이 스쳐갔다.
산란한 마음을 주워 담고 담임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애런의 몸 상태에 대해 말씀드렸다. 역시 내가 또 오만을 떨었다. 담임선생님도 이미 모든 걸 알고 계셨고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머리가 떡이 져 있는 건 애런이 씻는 것을 거부해서라고 하셨다. 담임선생님도 어머님이랑 직접 연락은 못 하시고 다문화 담당 선생님을 통해 통역을 해서 연락을 하신다고 하셨다. 다문화 담당 교사라니. 시대에 맞게 학교도 변하고 있었다.
진작에 가정으로 보낸 ‘발달장애 검사 신청서’는 늘 비어 있는 채로 애런의 가방에 그대로 들어있었다. 잠시 머물다 가는 나라로 여겨서 그러시는 건지 부모님은 학교의 요청에 묵묵부답이셨다. 텅 빈 종이를 바라볼 때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애런은 점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자 오늘은 자기가 제일 재밌게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그 책에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았던 장면을 연기해 보는 시간을 갖겠어요~”
‘으악! 저걸 어떻게 영어로 설명해 주지?’
당장 넘어야 할 벽은 자폐성향보다 언어였다. 한국어를 못하는 애런이 최대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때 번뜩 해외여행 때 유용하게 사용한 번역 앱이 생각났다. 급하게 앱을 켜고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신 걸 그대로 한글로 치니 0.1초도 되지 않아 영어로 번역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디지털 만만세!!
“애런! 룩 디스!”
애런은 번역된 문장들을 정확히 읽어 나갔다. ‘영어는 또 잘 읽네.’ 신기해하며 쳐다보니 애런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케이!”를 외쳤다. 결과적으로 애런은 교실 앞에 나가서 제대로 발표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애런과 나 사이에 자그마한 비밀 비서가 한 명 생긴 것 같아 마음은 든든했다.
그날은 수학 시간이었다. 문제를 스스로 읽고 수행해내지 못할 뿐이지 내가 영어로 설명을 해주고 “풀어보세요.”라고 하면 애런은 곧잘 정답을 맞혔다. 그런데 그날따라 주변에서 계속 방귀냄새가 솔솔 나는 것이다. 누가 방귀를 뀌었나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수업 시간 내내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수업이 끝나고 담임 선생님께 애런에게서 계속 변 냄새가 난다고 말씀드렸더니 남자 학습도우미 분께 확인을 요청하셨다.
바지에 큰일은 본 게 맞았다. 살짝 이었지만 그 아이는 변이 묻은지도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찜찜함도 모르고 표현할 줄 도 모른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당장 애런의 변이 묻은 옷을 부모에게 던져버리고 싶었다. 왜 발달 장애 검사 신청서를 채워 넣지 않느냐고 아이를 방치할 거냐고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애런에게서 나는 냄새들은 변 냄새, 쉰 냄새, 머리 냄새, 모두 생각만 해도 코를 찌르는 냄새들이다. 갈색 곱슬머리에 하얀 피부, 동그랗고 큰 눈을 가진 애런에게 어울리지 않는 냄새였다. 그 아이한테서는 갓 끝낸 빨래의 포근한 냄새가 나야만 했다.
2학기가 되어서야 애런은 발달장애 검사를 받고 자폐아 판정을 받았다. 특수아 진단을 받게 되면 하루 2시간을 특수반에서 보내게 되는데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 애런은 전에 비해 훨씬 편해 보였다.
어느 날 출근길에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등원하는 애런을 보게 되었다. 폴짝폴짝 뛰면서도 엄마 손을 놓지 않던 애런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나의 지레짐작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가만히 애런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던 냄새들이 걷어지고 본연의 체취를 낼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리라.
“애런! 하우 아 유?”
“아임 파인 땡큐 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