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해내고 있는 중입니다

ep5. 매일 지적받는 아이

by 집순이의반란

*사용된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나는 칭찬을 받으면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나에게 실망하고 더 큰 비난이 돌아올까 두렵다. 결국 지적받는 두려움에 칭찬까지도 꺼리는 아주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어른인 나도 지적받는 걸 번지점프에서 뛰어내리는 것보다 무서워하는데 아이들은 어떨까. 게다가 매일 지적받고 혼이 난다면.


태성이가 그런 아이였다. 매일같이 밥 먹듯이 지적받는 아이. 이유는 하나였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과거에는 그저 산만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정신의학과를 지나갈 때면 ‘ADHD 전문! 달라질 수 있습니다!’라는 홍보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저희 반에 태성이라고 있는데 수업에 전혀 집중을 못해요. 선생님께서 옆에서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ADHD진단을 받아서 약을 먹고는 있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네요.”

처음 본 태성이는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수업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었다. 눈에서 홀로그램이 나와 무언가를 주시하듯 앞을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아이의 탁해진 눈은 어쩐지 처연해 보였다. 아무래도 약의 부작용 같았다.

수업시간 내내 ‘적어 보세요’와 ‘몇 페이지 펴보세요’의 사이에서 태성이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우뚝 멈춰 있었다.

“태성아 칠판에 있는 글자를 교과서에 적어 보자.”

나의 부탁에 태성이는 눈을 껌벅껌벅 대며 연필을 이리저리 움직이기만 할 뿐이다. 책상 위에는 텅 빈 교과서만 남아있다. 의식까지 심연으로 잠긴 것일까. 내가 가지고 다니는 노트에 적어야 할 내용을 써서 태성이 자리에 올려놓았다.

“태성아 이걸 적으면 돼.”

고개를 꾸벅하며 연필을 그러쥐는데 이미 그 부분이 지나간 지 한참이다. 누군가 옆에서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수업시간 안의 태성이는 무중력상태처럼 떠다닐 뿐이었다.

한 달이 지난 뒤 담임선생님께서는 태성이를 지켜본 나의 견해를 여쭤 보셨다. 한 달 내내 첫날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던 태성이에 대한 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변화가 없음을 선생님도 인지하고 계셨고 부모님께도 약에 대한 차도가 없음을 말씀드리겠다고 하셨다.


그 후 약을 바꾼 건지 태성이는 눈에 띄게 수업태도가 좋아졌다. 칠판을 똑바로 응시하고 교과서는 글씨로 꽉 차 있었다. 항상 태성이 옆에 서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잔소리를 해대는 엄마처럼 굴었는데 이제는 멀찍이 뒤에서 중력의 힘을 받아 꾹꾹 눌러쓰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만의 홀로그램을 끄고 진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제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구나! 장하다 태성아!!’라며 흐뭇해했다. 그때까진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믿었다.


2학기가 되고 태성이는 다시 심연으로 잠수하고 있었다. 방학을 보내고 온 아이는 전보다 증상이 더 심해져 있었다. 멍을 때리는 건 기본이고 순간의 충동을 참지 못하였다. 그날은 프린트물 하나를 찾아야 했는데 태성이의 책상 서랍 속은 교과서들과 내용도 모를 종이들이 범람하는 재난 현장이었다. 서랍 한편에 놓인 필기구통에는 눅눅한 휴지가 쌓여 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간 사이의 근육이 살짝 움찔하였고 카오스 속 종이들을 꺼내 들어 물었다.

“태성아 필요 없는 것들은 버리자. 여기에 필요한 거 있어?”

태성이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나는 그것들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잠시 후 태성이의 목소리는 격앙되기 시작했다. 자기에게 필요한 프린트를 버렸다는 이유였다.

“아 진짜... 선생님이 버렸어!!!”

태성이가 찾던 프린트는 책상 서랍에 그대로 있었다. 그때 이후로 태성이는 내가 가까이 가면 보지 말라고 시위하듯이 교과서를 악착같이 팔로 가렸고 수학 시간엔 아무 숫자나 써 댔다. 전에 없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약은 여전히 복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수학 시간, 오늘도 아무 숫자나 적는 태성이에게 말을 걸었다.

“태성아 이건 6이 아니라 4인 거 같은데? 빼기를 다시 해 볼까?”

그러자 태성이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태성이의 작은 가슴이 눈에 띄게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공기반 소리반으로 ‘후! 후!’ 소리를 내며 온몸으로 ‘저리 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태성아 선생님이 있는 게 싫어?”

“네.”

저렇게 단호하게 말한다고? 전과 다른 태도에 마음이 상하기도 전에 태성이가 또 씩씩대면서 나에게 눈을 흘겨 댔다. 터지기 직전의 압력솥처럼 콧속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태성아 그러면 선생님 갈까?”

“네. 가세요.”

오호라 이렇게 나오시겠다?

“선생님 눈 똑바로 봐 봐. 선생님이 다시 오지 않으려면 담임선생님께 말해야 해. 그렇게 할까?”

곧 터질 얼굴을 하고도 입을 꾹 닫는 태성이다. 담임선생님은 아직 무서워하기 때문에 나는 최후의 수단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태성이는 수업시간 내내 무언의 시위를 하듯이 바리케이드를 쳐 댔다. ‘내 거 보면 죽어’라는 아우라를 내뿜었다. 그 후 나는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태성이를 주시했고 너무 집중을 못한다 싶을 때에만 개입했다.


“너 선생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사람을 째려보는 건 나쁜 행동이야!”라고 혼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태성이는 줄곧 지적에 혼만 나는 아이였다. 거기에 나의 한 마디까지 보탤 필요는 없었다.

태성이는 2학기 내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고 나에 대한 경계심은 그대로였다. 태성이의 철옹성 같은 어깨를 바라보니 ‘이거 틀렸는데?’, ‘다시 풀어볼까?’라는 나의 말들이 아이에게는 지적이고 꾸짖음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적으로 혼을 내지 않았다는 나의 착각일 뿐 태성이에겐 나는 혼을 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기의 의도와 다르게 못난 아이로서 매일 지적받다 보니 순두부 같은 말들도 칼날이 되어 꽂혔을 것이다.


태성이는 계속 약을 먹으면서 자기에게 맞는 방향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아이는 평생 약을 먹으면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사회에 나가서 주변인들과의 사회적 활동 또한 어려워할 수도 있다. 태성이가 잘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질환을 정확히 이해하고 스스로 조절하며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태성이는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언제든 넘어지면 잡아 줄 사람들이 뒤에서 늘 서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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