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해내고 있는 중입니다

ep6. 컴퍼스는 죄가 없다

by 집순이의반란

*사용된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퇴근을 하고 한껏 늘어져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휴대폰 화면에 학교 전화번호가 나타났다. 퇴근 후 학교에서 전화가 온 적이 없었기에 목 뒤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무슨 일이 났구나.’

몸을 떨어대는 휴대폰을 붙잡고 느릿하게 초록색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선생님~ 여기 학교인데요~! 내일 종일 분리되는 학생이 생겨서 연락드렸어요!”

간간히 한 시간 정도 데리고 있던 경우는 있었는데 하루동안 분리되는 학생은 처음이었다. 어떤 무지막지한 놈이길래 종일 나와의 지루한 시간으로 벌을 받는 걸까 궁금했다. 조심스럽게 연유에 대해 물었고 돌아온 답변은 ‘알려줄 수 없다’였다. 아무래도 분리 조치까지 되는 걸 보면 학교 폭력 사안까지 간 것 같은데 민감한 정보라 말을 아끼신 것 같다. 그래도 아무 정보도 없이 종일 지도를 하려고 하니 심장이 펄떡거렸다. 두 가지 당부만이 전해졌는데 무심하게 대할 것, 분리지도 교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면 안 될 것이었다. 어딘가 무시무시한 지침을 듣고 나니 심장이 두 배로 펄떡거렸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혹은 내일이 빨리 지나가기를.


다음날 잰걸음으로 도착한 분리교실 앞에 담당 선생님이 서 계셨다.

“선생님~ 오늘 분리될 학생은 서윤우인데요. 이 교실에서 나가면 안 되고 화장실을 간다고 할 때에도 문 앞에서 지키고 계셔야 해요. 다른 아이들과 접촉은 절대 하면 안 되고 점심도 선생님께서 직접 받아서 가져다주셔야 해요.”

도대체 서윤우라는 아이는 누구인가! 탈출을 막아야 하는 교도소 간부가 된 나를 상상하며 윤우를 기다렸다. 교감 선생님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윤우는 통통한 얼굴에 안경을 끼고 있었다. 축 처진 눈썹과 발간 볼은 영락없는 초등학교 4학년 장난꾸러기 남자아이였다. 번뜩이는 눈과 섬찟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상상한 내가 무안해질 정도였다. 나와 함께 분리지도실로 들어간 윤우는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배경에 대해 무지의 상태였기 때문에 요구받았던 무심한 태도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윤우야 안녕. 오늘 하루 같이 있을 선생님이야. 1교시는 수학 문제를 풀어볼까?”

“네.”

얌전하게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윤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니..’

다 푼 문제를 채점을 할 때마저 윤우는 조용히 기다렸다.


2교시 이후 20분간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중간놀이 시간이 있는데 윤우는 창밖에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곤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아 진영이다! 진영아! 저도 나가게 해 주세요 선생님.”

“안돼 윤우야. 오늘은 여기서 못 나가.”

“아아아 아아아!!”

창문에 달려있는 커튼을 잡아끌며 윤우는 점점 본색을 드러냈다. 낯선 선생님을 향한 가면이 한 꺼풀 벗겨진 것이다. 윤우는 지시보다 저지에 예민 정도가 높았다. 친구들은 재밌게 운동장을 내달리고 있는데 자신만 이곳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니 더 분심이 났을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똑같이 운동장을 뛸 수 있을 것이라는 후회와 반성은커녕 윤우는 애꿎은 자주색 커튼만 잡고 늘어져 케케묵은 먼지만 폴폴 날렸다.

과학선생님이 꼭 제출해야 한다며 쥐여주고 가신 시험 문제를 풀게 했는데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문제를 푸는 윤우다. 참 모를 아이였다.


점심시간이 오자 윤우에게 절대 나가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 급식실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빵 셔틀도 아니고 식판 셔틀이라니. 음식을 받아 교실로 내려가는 내 모습에 왠지 웃음이 났다. 문 앞에 서서 웃음기를 덜어내고 들어가 윤우에게 식판을 건넸다. 쇠와 쇠가 만나 내는 시큰시큰한 소리가 거슬리면서도 내 앞에서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를 보니 견딜 만했다.

“저 선생님.. 밥이랑 떡꼬치 더 먹고 싶어요..”

“그래? 그럼 선생님이 다시 다녀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야 해.”

용기 내서 말했을 아이가 무안할까 나는 바로 식판을 집어 들고 두 번째로 급식실에 올라갔다. 그런데 영양사님이 밥과 반찬은 더 줄 수 있지만 떡꼬치는 줄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의기양양하게 떡꼬치를 들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밥과 몇 가지 반찬만이 다시 리필되어 윤우에게로 갔다. 윤우는 그런대로 만족하며 다시 돌아온 밥을 싹싹 다 긁어먹었다. 식판을 반납하러 세 번째로 급식실에 갔을 땐 윤우가 혹시 몰래 나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후다닥 돌아간 분리교실엔 윤우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연료를 가득 채운 로켓이 윤우이고 점화의 불꽃이 친구들 같았다.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윤우는 얌전했다.


끝날 시간이 다가오자 군소리 않고 과제를 잘 한 윤우에게 자유시간을 주기로 했다.

“윤우가 문제 다 잘 풀었으니까 남은 시간은 쉬어도 돼.”

“선생님 저 교실 좀 갔다 올게요.”

“아냐 오늘은 교실에 못 가. 여기서 바로 집으로 가야 해.”

“담임 선생님께 인사하고 가고 싶은데요? 그냥 가면 예의가 없잖아요.”

어떻게든 교실에 가고 싶은 윤우는 예의를 운운했다. 친구들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물건을 두고 왔다 등등 별 이유를 늘여 놓았지만 먹히질 않자 책상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 말도 않고 뚫어지게 쳐다만 보니 일어나서 창문 앞을 서성서성거린다. 괜히 시간을 줬나 후회가 됐다. 문 쪽으로 가서 문을 열려고 하기에 바로 막아섰다. 그러자 다시 창문으로 가서 서성댄다. 윤우에게 자유시간은 참아 내야만 하는 존재였다.


“선생님 4교시 끝나면 후문에 아버님이 와 계실 거예요. 어디 못 가게 바로 후문으로 데리고 가서 아버님께 인계해 주시면 되세요.”

담당선생님의 말을 다시 상기하고 4교시 종료 종이 치자마자 윤우를 데리고 문밖으로 나왔다. 그때 갑자기 윤우가 복도를 뛰어가더니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나의 반응을 보는 것 같았다. ‘계단 위로 올라가면 바로 튀어 가서 잡아야지’ 생각하며 100미터를 몇 초에 뛰었는지 기억하려 하는데 다행히 윤우는 현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속 뜀박질을 하면서 약 올리듯 나를 뒤돌아보는데 절대 뛰지도 같이 가자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후문엔 약속대로 아버님이 나와 계셨고 가볍게 인사를 드렸지만 아버님은 날 보고도 길거리에 널린 전봇대를 보듯이 했다. 두 부자는 아무 말도 없이 터벅터벅 후문을 빠져나갔다. 그 어떤 인사도 없이.


후에 전해 들은 그날의 일은 윤우가 ‘컴퍼스로 친구를 찔렀다’였다. ‘굉장한 친구와 하루를 보냈었군’하면서 언젠간 윤우와의 재회가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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