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해내고 있는 중입니다

ep8. 금기어

by 집순이의반란

*사용된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폐 속이 포근해지는 봄내음에서 아릿한 겨울 공기를 맡을 때까지 지나간 시간들 속에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켜켜이 쌓이게 되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맑은 웃음을 짓는 아이들에게 깊어진 마음을 마구 표현해도 늘 모자랐다. 특히 1년 내내 지원을 들어갔던 1학년 4반 아이들은 애정을 넘어서 애착까지 갈 지경이었다. 반 아이들 모두 어느 하나 모난 데가 없는 구석에 예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살을 더 성장하고 2학년이 된 아이들은 복도에서나 운동장에서 나를 마주칠 때면 “선생님~~~~!!”하면서 달려와 안겼다. 그 모습들이 너무나 예뻐서 나는 그만 실수를 하고 만다.


금요일이었다. 그날따라 그 아이들이 보고 싶어 평소엔 하지 않던 생각이 떠올랐다.

‘애들 보고 싶은데 급식실에 가서 얼굴이나 보고 올까?’

잠깐만 보고 오자는 마음으로 한 층 아래 급식실로 내려가 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곳곳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숟가락을 든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인사하는 이서가 먼저 눈에 보였다. 동글동글한 이마에 무쌍의 커다란 눈을 가진 이서는 내 핸드폰으로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서 포즈를 취하는 붙임성 좋은 아이다.

“이서야~~ 반가워~ 잘 지냈어? 그새 많이 컸다~”

이서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내 등을 톡톡 건드린다. 누군가 싶어 슬쩍 돌아보니 도건이가 배시시 웃으며 서 있었다. 도건이는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지닌 아이였다. 친구들끼리 다툼이 일어나거나 부정적인 상황이 생겨도 늘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했다. 작년보다 훌쩍 커버린 모습으로 서 있는 도건이를 보자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살이 오른 도건이의 볼로 왠지 모르게 시선이 닿았다.

“도건아~ 오랜만이야~~ 진짜 많이 컸다~~ 도건이 통통해졌는데??”

키도 커지고 건강해 보인다는 의미였다. 나는 몰랐다. ‘통통하다’, ‘뚱뚱하다’, ‘똥똥하다’, ‘퉁퉁하다’ 등등 온갖 몸무게나 몸매에 관한 단어들은 절대 뱉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으하하하하하~~~!!!! 도건아 너 통통하대~~~ 하하하하하”

이서가 나의 말을 듣고 도건이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악의적인 웃음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웃겨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빌미를 준 나의 잘못이었다.


순간 공기가 싸늘해졌다. 온도계의 눈금이 올라가듯이 도건이의 목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붉은색이 점점 차오르는 게 보였다. 도건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이미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내 손바닥에는 땀이 찰랑찰랑 거렸다.

“도건아... 통통하다는 건 나쁜 말이 아니야~! 도건이가 건강해 보인다는 말이야~ 도건이가 키도 커졌고! 더 멋있어져서~!!”

당황을 겸비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수습불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도건이는 숙인 고개를 들 생각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손의 땀이 첨벙첨벙으로 바뀌었다. 당황하기는 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도건이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

“도건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환장하것네. 무슨 바람이 불어서 평소에 하지도 않던 급식실 탐방을 나서서 이 난장판을 정성스레 조성한 것이야.’ 후회가 밀려왔다. 자의 던 타의 던 학생을 울린 건 처음이었다.

“도건아.. 이서도 놀리려고 한 게 아니야.. 도건이가 엄청 멋있어져서 선생님이 그렇게 말한 건데 미안해..”

“... 선생님... 그냥 가주세요...”

그 순간 다시 도건이의 볼 위로 눈물 한 가닥이 흘러내렸다. 더 있다 가는 도건이의 심기를 건드릴 것 같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도건이 맞은편에 앉은 이서도 울기 직전이었다. ‘통통해졌다’ 한 마디가 불러온 나락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양쪽 아이를 토닥여주고 부랴부랴 급식실을 빠져나가려는데 “선생님! 잠시만요!”라는 소리가 붙잡았다. 이서와 도건이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선생님. 지금 무슨 상황이었는지 이따가 제가 전화로 여쭤볼 테니까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입을 왜 놀려서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한 건지, 푼수 마냥 급식실을 가서 일을 크게 만든 건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자리로 돌아와 점심시간이 끝나기만을 아득히 기다렸다. 마뜩잖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계속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따르릉따르릉-

“네, 강희숙입니다.”

“선생님 2학년 1반인데요. 아까 급식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괜스레 선생님의 목소리가 송곳이 되어서 나를 찌르는 것 같았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라고 말이다.

“아.. 그게 제가 도건이한테 ‘통통해졌다’라고 했는데 기분이 안 좋았나 봐요.”

“앞에 앉은 이서도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 제가 도건이 보고 통통하다고 한 걸 듣고 이서가 살짝 놀렸거든요. 바로 사과는 했어요.”

내 말을 찬찬히 듣던 선생님은 의외의 말을 꺼내셨다.

“그런데 선생님. ‘통통’하다는 말 한마디로 이럴 일일까요?”

나는 ‘선생님 애들 앞에서 말을 조심하셔야 해요’라는 부류의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이후 선생님이 도건이에 대해 꺼내신 말들은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도건이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무슨 말만 꺼내면 울상이 되는 일이 잦았고 예민하다고 느낄 정도까지 우는 빈도수가 늘어났다고 했다. 난 믿을 수가 없었다. 불과 세 달 전만 해도 도건이는 세상에게 가장 긍정적인 아이였다. 체육시간에 넘어져도 공을 맞아도 툭툭 털고 일어나 너털웃음을 지었던 아이다. 급식실에서 도건이의 반응이 더욱이 당황스러웠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내가 담임 선생님이 아니면 절대 알지 못할 학부모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도건이 어머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대부분의 이유는 '도건이의 마음이 상해서'였다. 이제야 담임 선생님이 도건이의 우는 모습을 보고 나에게 날 선 태도를 보이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3월 내내 도건이 엄마의 민원에 시달리셨던 것이다.


“하.. 이번에 또 전화가 올 것 같은데.. 그런데 통통하다는 말을 들어서 운다는 게 저는 잘 납득이 안 가요 선생님.. 매번 울고 집에 가서 어머님께 전화가 오는 게 하나의 루틴이에요. 물론 이서가 놀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의 상황은 학교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이미 민원전화에 잔뜩 지치신 선생님에게서는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나는 내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너무나 죄송했다.

“저 선생님.. 만약에 어머님께 전화가 오게 되면 제가 한 번 통화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당사자이니 대화를 해볼게요.”

“아니에요 선생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전화가 오면 제가 해결해야죠.”

“죄송해요 선생님.. 괜히 제가 그런 말을 해서.. 혹시라도 도건이 어머님께 전화 오거나 무슨 일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주말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온 신경이 2학년 1반 전화기에 가 있었다. 도건이 어머님께 전화가 왔었다면 내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리느라 주말을 다 보냈다.


월요일. 출근을 하자마자 2학년 1반으로 전화를 걸었다. 마냥 기다리기엔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았다. 나의 잘못으로 내가 지탄받으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 타인이 고난에 빠지게 되니 죽을 맛이었다. 전화를 받으신 담임 선생님은 다행히 금요일과 오늘 아침까지도 도건이 어머님께 아무 연락이 없다고 하셨다. 담임 선생님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이제 앞으로 도건이에게 거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자체 검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난 내가 정의하는 아이와의 관계가 둔중해짐을 깨달았다. 이토록 지난스러워진 관계에서 표현의 온도를 몇 도로 해야 하는 것인가.

변해버린 아이는 마치 고막 같았다. 모든 소리를 흡수하는 얇고 반투명한 막. 그 여리여리한 막 앞에서 나는 어떤 소리를 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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