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혼잣말과 두려움
*사용된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학교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 상민이는 내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던 아이다.
어느 날 학생부장 선생님이 오셔서 한 시간 정도 봐줘야 할 학생이 생겼다고 하셨다. 5학년 남학생이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사람 간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 학생이 상민이었다.
상민이는 친구들과 대화를 원활히 하지 못하였고 친구들은 그런 상민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반 아이들은 불편함을 지속적으로 담임 선생님께 호소하였는데 결국 수업 시간 중 한 시간을 빼서 반 아이들에게 상민이와 같은 친구들의 특성을 알려주는 교육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반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동안 내가 상민이를 따로 데리고 있어야 했다. 대화가 잘 되지 않을 뿐이지 폭력적이거나 말을 안 듣는 학생은 아니라고 했다. 그간 여럿 아이를 경험하고 다루었다고 생각해 이번 시간은 쉽게 지나갈 것이라 안이했다.
교육시간 전 연구실에서 상민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담임선생님과 함께 상민이가 들어왔다. 키도 크고 소위 꽃미남이라고 할 만큼 얼굴이 잘 생긴 상민이를 보면서 나는 의아했다. 보통 훤칠하고 잘 생기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기 마련인데 교우관계에 마찰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아이와 잡담이나 할 순 없으니 학교에 구비되어 있는 이런저런 보드게임을 가지고 왔다. 상민이에게 하고 싶은 게임이 있냐고 물으니 젠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젠가 게임을 하면서 나는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상민이는 친한 친구 있어?”
“네, 영우랑 진혁이요.”
친구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상민이는 내가 묻지도 않은 친구와의 일화를 시시콜콜 늘어놓았다.
“아~ 그랬구나. 그러면 영우랑은 뭐 하-”
“여기서 이렇게 올릴 거예요.”
상민이는 나의 말을 딱 자르고 젠가의 나무 한 조각을 들고 자기 말만 했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중얼중얼거렸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응? 응?”을 연달아 물었지만 대답도 않고 계속 혼잣말을 해댔다.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었다.
차례로 한 번씩 나무조각을 위로 올리는 규칙에도 상민이는 자기가 두 번 연속으로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왜 상민이가 친구들과의 관계가 안 좋을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규칙을 이해하고 따르는데 문제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더 걱정스러웠던 모습은 쉴 새 없이 나오는 혼잣말이었다. 교사로서 모든 아이들을 이해하고 헤아려 줘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상민이의 모습은 어딘가 기이해 보여 그 신념이 흔들리는 듯했다.
젠가를 정리하고 미니 농구 게임을 꺼내 보이니 상민이는 빨리 해보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차례대로 발사대에 농구공을 놓고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러서 골을 넣는 게임인데 역시 상민이는 계속 버튼을 눌렀다. 하는 수 없이 혼자서 게임을 하게 두고 대화를 시도해 봤다.
“상민아 상민이는 농구 좋아해?”
“네, 좋아해요.”
그러곤 고개를 살짝 돌리면서 웃음기 있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키킥 내가 좋아하지 선생님은 좋아할까. 키키킥”
나는 상민이의 혼잣말을 모르는 척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오~ 그럼 게임 중에서 좋아하는 것도 있어?”
“로블록스 좋아해요.”
또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린다.
“키키키 선생님은 어디에 살까. 물어볼까 말까. 키키킥”
그때 난 소름이 돋았다. 처음으로 학생이 무서웠다.
의자를 집어던져도 소리를 질러도 아이들로부터 내가 느낀 건 두려움이 아니라 연민이었다.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 저렇게 온몸으로 몸부림치고 있구나. 이런 생각에 보듬어 주고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데 상민이는 달랐다. 낄낄대면서 다 들리게 혼잣말을 하는 상민이의 모습에 난 움츠러들었다.
더 이상 나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중얼거리는 상민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종이 울렸고 상민이는 “안녕히 계세요.” 한 마디를 남기고 교실로 돌아갔다.
상민이는 일반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40분. 상민이와 같이 보낸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에도 이상함을 느꼈다.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인터넷으로 경계선 지능장애를 찾아봤다. 어디선가 스쳐 본 그 단어가 갑자기 생각났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의 어려움, 떨어지는 사회성, 오해받는 행동, 문제해결 능력 부족, 학습능력 저하 등 상민이의 증상과 매우 흡사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같은 교실을 쓰고 있는 협력교사 선생님이 수업을 끝내고 들어오셨다. 5학년 수업을 모두 들어가시는 분이라 혹시 아시는 게 있을까 싶어 상민이에 대해 여쭤봤다.
“아~ 상민이요? 잘 알죠. 수업을 못 따라오고 친구들과도 잘 못 지내더라고요. 아무래도 경계선 지능인 것 같아요.”
선생님도 나와 같은 생각이셨다. 이유 없이 중얼거리는 상민이의 말들이 경계선 지능장애라는 이름으로 명확해지자 밀려왔던 두려움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물론 나와 협력교사 선생님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단순히 눈치가 없는 것 일 수도 있다. 반 아이들도, 나도 느낀 두려움은 어쩌면 생소하기에 그 무게가 묵직했던 것이 아닐까.
담임 선생님도 학생 부장 선생님도 자세한 이야기는 조심하시는 것 같아 상민이에 대한 것은 더는 묻지 않았다. 어쩌면 상민이를 탓할 수도 혼낼 수도 있는데 반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는 방법을 택한 선생님들에게 왠지 모를 감사함을 느꼈다. 선생님들도 반 친구들도 상민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잠깐 봤던 모습으로 판단을 내리고 순간 다름으로 규정지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아마도 상민이의 혼잣말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서 생경함을 걷어내면 달리 보이지 않을까. 혼자 하는 말이 아니라 혼자 이기에 하는 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