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잘 해내고 있는 중입니다
*사용된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어느 날 한 선생님이 복도 지도를 하고 있던 나에게 다가오셨다. 병가를 낸 담임 선생님 대신 반을 맡고 계신 기간제 선생님이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희 반에 감당이 안 되는 학생이 있는데요. 도저히 수업 진행이 안 되네요. 혹시 지원을 들어와 주실 수 있을까요?”
2학기 중반이라 시간표가 어느 정도 찬 후 여서 일주일에 두 시간만 지원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선생님은 두 시간만이라도 도와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만나게 된 아이가 재영이었다. 선생님도 갑작스러운 담임 선생님의 병가로 급하게 오신 터라 재영이에 대한 자세한 배경은 모르고 계셨고 난 아이에 대한 사전 이해 없이 교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 만난 재영이는 선생님의 말씀보다는 얌전한 모습을 보였다. 문제점이라면 뒤에 앉은 친구에게 말을 걸기 위해 항상 몸을 오른쪽으로 튼 채 자리에 앉았고 수업 중간중간에 쓸데없는 말들을 하는 정도였다. 그 외에 문제를 푸는 시간에는 조용히 문제를 풀었고 수학 문제도 곧잘 맞혔다. ‘재영이 옆에 딱 붙어서 전담마크를 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수업에 들어갔는데 의외로 혼자서도 학습을 하는 재영이 덕분에 다른 아이들의 공부도 돌아가면서 봐줄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지원을 들어가면 무한 햇살 정책을 펼친다. 칭찬을 최대한 많이 해주고 아이의 좋은 모습만 보려고 노력한다. 처음엔 ‘저 사람 뭐야’라는 눈빛을 보내는 아이도 나의 칭찬 폭격을 맞고 나면 조금씩 마음을 열기 마련이었다. 소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지적과 질타를 받은 경험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잘못을 했음에도 ‘우쭈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장점을 극대화해서 표현해 주는 방법으로 대했다. 재영이도 마찬가지였다. 재영이가 혼자 문제를 풀면 거의 ‘수학천재’라고 추켜세우며 칭찬을 해줬다. 재영이는 “이 정도는 다 푸는데요?”라고 샐쭉거리면서도 입꼬리는 위로 씰룩 댔다. 그렇게 3주가 지나가고 병가를 내셨던 담임 선생님이 돌아오셨다.
돌아온 담임 선생님께 지원 사실을 알려드리고 계속 지원을 들어갈지 여쭤봤다. 담임 선생님도 지속적으로 지원이 되길 원하셨고 2학기가 끝날 때까지 재영이를 봐주게 되었다. 그동안의 지원 내용을 담임 선생님과 공유하면서 재영이가 2학기 때 전학을 왔고 한부모 가정인 걸 알게 되었다. 지난 3주 동안 잘해왔던 재영이었기에 앞으로의 시간도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다.
재영이는 익숙한 담임 선생님의 컴백과 보조교사에 대한 익숙함이 더해지면서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업의 맥을 딱딱 끊을 정도의 큰소리로 말을 많이 했고 수업 시간 내내 뒤를 돌아보며 뒷자리 친구에게 계속 시비를 걸었다. 그때부터 나는 재영이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재영이가 목소리를 낼 때마다 조용히 하라며 어깨를 꾹 잡았고 돌아보지 못하게 재영이의 의자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수업을 한 시간만 들어갔다 나와도 진이 다 빠졌다.
다음날 재영이네 반에 들어가니 재영이 뒤에 앉아있던 선우가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재영이 뒤의 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선우에게 조심스럽게 자리를 왜 옮겼냐고 물으니 재영이 때문에 옮겼다고 대답했다. 그곳엔 지난 3주간 얌전했던 재영이는 사라지고 안하무인의 재영이가 앉아 있었다. 무엇이 진짜 재영이의 얼굴인 것 인가.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을 딱딱 끊는 일이 잦아 지자 점점 주변 아이들도 불편한 기색을 내기 시작했다. 뒤에 앉은 친구가 없어지자 불똥은 옆 분단에 앉은 지유가 고스란히 받게 되었다. 그날은 지유도 참을 수 없었는지 재영이에게 한 마디를 던지며 화를 냈다.
“야 김재영 시끄러워. 조용히 해.”
그 말 한마디가 재영이의 심기를 툭 건드렸다.
“뭐래! 신경 쓰지 말고 꺼져.”
각자 푼 수학문제를 제출하는 시간이어서 약간 소란스러운 교실 덕분에 재영이의 말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만 들을 수 있었다. 순간 재영이의 입에서 ‘꺼져’라는 말을 들은 나는 당황했다. 지금까지 내 앞에서 비속어를 쓴 아이는 없었다. 의자를 집어던지고 째려보기는 했어도 면전에 대고 나쁜 단어들을 내뱉지는 않았다. 하나 같이 최후의 보루처럼 욕설은 참아냈다. 하지만 재영이는 서슴없이 내 앞에서 비속어를 말했다.
“재영아! 그런 말하면 재영이 네 마음도 다치는 거야. 절대 하면 안 돼.”
“왜요! 뭐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안돼. 친구도 기분 나쁘고 그런 말을 하는 네 마음이 제일 다치는 거야. 이건 꼭 알아야 해. 하지 마.”
퉁퉁거리는 얼굴로 자리에 앉은 재영이는 조용해졌지만 내 마음은 심란했다. 재영이의 문제 행동이 점점 심해지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내가 없는 시간에 또 친구를 괴롭혔는지 다음에 재영이네 반을 갔을 땐 뒤에 뒤에 앉았던 친구도 다른 분단으로 자리를 옮긴 후였다. 재영이는 반에서 마치 고립된 섬처럼 혼자 앉게 되었다.
재영이의 행동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항상 재영이 의자 뒤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까이서 재영이를 지켜보니 재영이의 쉴 새 없는 말들이 ‘나 좀 봐줘!’로 들리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도 내가 지나가다가 자기를 못 보고 지나치면 꼭 다시 돌아와 자기가 여기 있다는 식으로 “선생님! 뭐 하세요?”라며 말을 걸었다. 재영이는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이다.
재영이의 숱한 문제 행동은 어떠한 결핍에 의해 발현되는 것 같아 보였다. 아이가 관심에 갈급해 보이자 나는 재영이가 소란을 피울 때마다 어깨를 잡고 “재영아 넌 잘할 수 있어.”를 말해줬다. 조용히 하라는 말을 이미 재영이에겐 무용지물이었다. ‘넘치는 관심과 칭찬을 쏟아내 주자’라는 마음으로 “넌 할 수 있어, 정말 잘한다, 역시 뭐든 잘해.”라는 말들을 더 많이 들려줬다.
겨울방학이 며칠 안 남은 시점에 수업 진도를 모두 나가고 학습이 마무리되자 담임 선생님은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을 마련하셨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노래, 춤, 검도, 퀴즈 내기와 같은 장기를 교실 앞으로 나와 뽐냈다. 그때 재영이가 나를 불렀다.
“선생님, 저는 노래 부를 거예요.”
“그~래?? 무슨 노래 준비했는데??”
“잠깐 시간 될까. 이무진 노래예요.”
“와~ 기대되는데? 선생님 노래 제목 적어 놔야겠다!”
재영이는 자기 차례가 되자 서슴없이 앞으로 나가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친구들 앞에서 해맑게 노래를 부르는 저 모습이 모든 걸 걷어낸 민낯의 재영이 일 것이다. 내가 만났던 아이들 모두 저마다 가지고 있는 회색 막을 걷어내고 환하게 웃으며 다니는 학교생활을 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방법을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을 뿐이다. 분노조절장애, ADHD, 경계선 지능장애, 금쪽이 이 모두가 아이들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잘 해내고 있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고군분투하며 해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학교로 간다.
만나서 반가워
아마 첫인사부터
이런 맘이었는지도 몰라
나 이제 네게 다가서려 해
거릴 좁혀보려 해
나 망설이지 않기를
-이무진의 ‘잠깐 시간 될까’ 가사 중-
그동안 '잘 해내고 있는 중입니다'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