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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해 Dec 03. 2023

자전거를 타며 깨달은 것들

자전거와 걷기


내 나이 29. 아빠에게 처음 자전거를 배웠다.


서른이 다 되어 자전거를 배우는구나. 자전거를 배우게 된 사연은 이러했다. 몇 년 전부터 갖고 싶었던 전기 스쿠터를 벼르고 벼르다 큰맘 먹고 당근에서 구매해 버렸는데 막상 타려니 어떻게 타야 할지 모른다는 것. 자전거 페달을 밟을 줄도, 중심을 잡고 핸들을 쥘 줄도 모르는 나는 전기 스쿠터를 데려온 첫날 스쿠터를 타고 패닉에 빠졌다.


그날 이후 전기 스쿠터를 타기 위해 아빠에게 자전거를 가르쳐달라고 꼬셨다. 자전거는 꼭 남자친구에게 배우려고 했던 건데 결국 아빠에게 배우게 되는구나. 그럴 거면 진작 배워놓을걸. 자전거를 타지 못해 아쉬운 상황은 종종 있었다. 친구들이랑 한강에서 따릉이를 못 탈 때, 여행 가서 다 같이 자전거를 빌려서 어디론가 이동할 때, 버스 타기엔 아깝고 걷기에는 너무 멀 때, 봄이나 가을이 되면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는 기분을 이야기할 때.


자전거를 배울 거라니까 주변 사람들은 자전거는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넘어지는 거 싫은데…. 가뜩이나 겁이 많은데 더 움츠려졌다. 어린 시절에도 넘어져 무릎이 까진 경험이 세 손가락 안에 꼽는 나였다. 그게 무서워 이날 이때토록 자전거 배우는 일을 미뤄왔다.


아빠는 자전거를 가르쳐주기 위해 내가 사는 동네로 넘어왔다. 준비물은 따릉이. 따릉이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접속해 처음으로 따릉이를 이용해 본다. 와 이것만으로 너무 신기해. 대여한 따릉이 한 대를 가지고 집 근처 하천으로 갔다. 자전거 도로가 아주 잘 되어 있기 때문. 다행히도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그날 바로 넘어지지도 않고 바로 자전거를 탔다. 한 시간 중 40분까지는 헤매다가 마지막에 홀로 자전거를 운영할 줄 알게 되었다. 마음속에는 기쁨의 탄성이 새어 나왔고 아빠도 하루 만에 자전거를 타는 내가 뿌듯했는지 연신 허허허 웃어댔다. 운전면허도 한 번에, 자전거도 하루 만에 이쯤 되면 나 꽤 운송 수단을 잘 다루나 봐!




아빠에게 자전거를 배운 이후,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평일에도 종종 시간을 내어 자전거를 타러 나왔다. 혼자서 중심을 못 잡는 탓에 ‘오 이거 나 탈 수 있는 거야?’ 싶은 날이 며칠 계속되었다. 중심이 흔들거리고 사람이 있으면 지나가지 못한 채 멈추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차츰차츰 멀리 갔다. 스쿠터를 타겠다는 일념으로 포기하지 않은 결과였다. 무엇보다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게 바로 친구들이 말한 바람을 맞는 기분구나!!! 나 혼자 바람에, 따뜻한 볕에, 자연 풍경에 취해 신이 났다.


그래서 전기 스쿠터도 탔냐고? 자전거에 익숙해져 갈 때즈음 전기 스쿠터를 타기 시작했지만 내게 너무 무겁고 빨랐다. 아직 자전거도 제대로 잘 탄다고 할 수 없을 때였으니 더 그랬을 거다. 스쿠터는 반년 정도 더 나의 근심 걱정거리를 차지한 뒤 다시 당근으로 갔다. 결국 내게 남은 건 ‘자전거 탈 줄 알게 되는 능력’. 서른 평생 자전거 하나 못 타서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 이 능력을 획득한 것만으로도 나는 한 해 잘 살았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늦었을 때가 가장 이른 때다.



아직 자전거 도로를 벗어난 곳에 타기는 여간 무리였다. 사람이나 차가 있으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자전거를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때 새로 이사한 집에서 내가 다니는 서점까지는 자전거로 20분, 도로로 40분, 버스로 20분 거리였다. 당연히 나는 자전거를 탈 생각으로 그 집을 계약했다. 앞으로 나의 출퇴근 수단은 따릉이다. 따릉이 1년 정기권을 결제했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누가 보면 우스운 상황이겠지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따릉이는 그저 남의 떡이었다. 따릉이 정기권은 정말 저렴했다.


매일 따릉이를 타고 출근과 퇴근을 한다. 자전거 도로가 없는 구간에서는 계속 자전거를 탔다 내렸다 반복하느라 20분이 아니라 30-40분이 걸렸다. 난감했지만 내게 더 나은 이동 수단은 없었다. 매일매일 출퇴근 구간을 왕복하니 어느덧 나는 도보와 차도에서도 자전거를 잘 타게 되었다. 무엇보다 따릉이를 타고 출퇴근하는 기분이 정말 최고다. 건강해지는 기분과 자연스럽게 가로수를 보며 자연의 변화를 느꼈다.




자전거를 타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걷기와 달리 자전거는 신호에 무척 민감하다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쌩쌩 달리다가도 신호가 걸리면 멈춰 서야 한다. 매일 같은 구간을 반복하는 나는 신호가 어디에 있는지, 언제 바뀌는지 대강 알기에 신호가 바뀌거나 신호에 걸리지 않도록 더 속력을 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거의 신호에 멈춰 있는 쪽이었다. 지금 나의 속도와 지금의 페이스가 마음에 들고 적당한데 신호에 걸리지 않기 위해 속력을 더 내려면 안 쓰던 힘을 써야 했다. 내 페이스가 망가지는 일이 싫었다.


신호를 의식하지 않고 달리니 운이 좋은 날은 빼고는 대개 신호의 걸려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꾸 멈춰 서기 때문에 그러면 오히려 또 나의 페이스가 깨진다는 아이러니가 생겼다. 멈추지 않고 신나게 달려 나갈 때만이 얻는 것들이 있었다. 우선 시간이 절약되고, 어쩌면 자주 멈춰 서지 않기 때문에 체력도 절약된다. 효율성이 아주 좋다. 신호에 걸리지 않고 도착한 날이면 내가 오늘 아주 잘 달린 것 같은 뿌듯함이 든다. 하지만 숨이 벅차기도 하다.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생의 속도가 느린 사람이다. 세상의 페이스보다 내 페이스를 중시하는 사람.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대기업이나 전문직 같은 소위 잘 나가는 직장이나 직업을 갖지 못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바쁘지 않게 사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남들이 자격증을 딸 때 나는 배낭여행을 갔고, 남들이 주식을 할 때 나는 독서를 했다. 그 삶은 세상의 기준에는 못 미치거나 뒤쳐질지 몰라도, 천천히 자연과 주변 사람도 관찰하고, 순간을 음미하며 인생의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


반면 속도가 빠른 사람은 원하는 곳에 누구보다 빨리 도착할 것이다. 세상의 흐름과 시류에 맞춰 살아가며 오히려 손쉽게 원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도 있다. 나처럼 속도를 내지 않고 달리느냐 계속 신호에 걸리다 보면 오히려 쉽게 지치거나 흥이 깨지기 마련이다. 하나하나 나의 기분, 취향, 니즈를 쫓다 보니 세상과 발맞춰가기 어렵다. 때로는 힘을 내어 속도를 내야 할 때는 내야지, 도리어 나의 에너지를 아끼고 더 내가 원하는 것에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 퇴근 후 따릉이를 봤는데 이상하게 자전거 타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따릉이를 빌리지 않고 대신 걸어갔다. 따릉이를 타면 20분 거리를 40분이 걸려서. 걸으면서 고민했다. 왜 나는 따릉이를 타지 않았을까. 생각의 결과는, 자전거를 타며 느끼는 바람의 감촉도 좋지만 그것보다 내 발이 땅에 붙어있다는 감각이 더 좋다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탈 때는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다. 가는 길에 제대로 된 자전거 도로가 모두 깔려있지 않아서 인도와 차도를 번갈아가면서 달린다. 그때마다 나보다 거대하고 빠른 차들과 나보다 느리고 연약한 사람을 피해야 한다. 평안한 마음으로 달리면서도 각종 위험에 휘말리지 않도록 사방을 경계하는 태도와 긴장이 필요하다.


반면 삼십 평생 해온 걷기에는 부담이 거의 없다. 오히려 내 발이 땅에 잘 붙어있다는 정확한 감각을 선사한다. 자전거를 타며 깨달았다. 걷기만큼 안정적이고 내 두 팔과 두 다리로 온전히 컨트롤하며 나아갈 수 있는 완벽한 이동 수단이 없음을. 또 생각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도 굉장한 장점이다.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탈 것들에는 생각할 여유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발길 닿는 대로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더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것처럼 걸으면서 하는 생각 또한 내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더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 누군가 길을 물어보려고 말을 걸지 않는 이상 방해받지 않는다.


매번 일렬로 주차되어 있는 따릉이를 포기하고 걷는 일을 선택한다. 나도 출근 시에나 시간이 빠듯할 때는 자전거를 곧잘 이용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더운 날이든 추운 날이든 걷는다. 어쩌면 내게 효율성이란 중요한 가치가 아닐지 모른다. 내 인생의 전반을 어떤 가치 위에 두고 보낼 것인지, 사소한 교통수단을 통해서도 느낀다. 걸으면서 느끼는 행복이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 행복보다 큰 이상, 작고 소박한 삶이 세련되고 화려한 삶보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상 나만의 길을 계속 걸어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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