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행복 vs미래의 행복
올해 희한하게도 ‘욜로’라는 단어를 자주 들었다. 한참 유행이 지나간 단어인데 말이다.
내가 만난 인터뷰이는 자신은 20대 때 욜로였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과거의 자신을 욜로라고 규정짓는 그이가 희한하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한 욜로는 현재를 위해 아낌없이 소비하고 즐기는 사람인데, 내가 본 그는 그저 열심히 철학책을 읽고 독서 스터디를 하는 등 자아탐구심이 넘쳤던 청년이었다.
사실 그가 말하는 20대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 굉장히 유사하다. 그런데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학교 선배와 카톡을 하다 그가 내게 ‘욜로네’ 말했다. 그와의 대화 내용은, 자신은 여자친구와의 결혼 준비를 위해 현재 먹고 입고 즐기는 것을 모두 아끼고 있는데 나는 ‘내 집 마련’이 어차피 불가능하니 지금을 즐겁게 잘 산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나도 걱정 하나 없이 맘 편히 현재를 즐기는 건 아닌데…‘ 싶었다.
그와의 대화를 끝내고 기분이 찝찝해 ‘욜로’라는 단어를 찾아봤다. ‘현재의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가리킨다고 쓰여 있었다. 현재의 행복을 중시한다… 욜로에 대한 정의를 보니 왠지 모르게 쓰라렸다. 나의 행복을 유보시키기보다 오늘의 행복한 날이 쌓여 미래의 행복한 내가 된다는 신념을 가진 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또 잊고 살던 중, 어제 친구들과 수다 떠는데 한 친구가 “얘야 말로 진짜 욜로지”라는 말을 들었다. 다시 한번 머리가 띵했다. ‘내가 욜로라고?’ 이야기 주제는 벌써 다른 내용으로 넘어갔지만 내 머릿속에는 ‘욜로’로 가득 찼다. 말을 삼킬까 하다 용기 내어 친구에게 물어봤다. “근데 내가 왜 욜로야?”
친구는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당황했는지 조심스레 말을 골랐다. “어… 그러니까 너는 한 직장에 정착하지 않고 매번 일이 바뀌고 또 연락해 보면 어디 여행가 있고 그러니까….” 친구의 대답을 들어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한 직장에 꾸준히 다니지 않는 게 왜? 월급에서 꼬박꼬박 저축하기가 어려워서 한 말인가?’ 속으로 답답함이 차곡차곡 차올랐다.
그리곤 친구는 내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그래 내가 아까 말했잖아. 너 진짜 멋있다니까. 열심히 사는 것도 알고. 너처럼 살면 인생에서 후회가 적을 거야” 어차피 내가 여기서 진지하게 반박해봤자 좋은 쪽으로 포장해 무마시킬 분위기라서 입을 다문 채 끄덕이며 넘어갔다. 하지만 그 날의 대화가 끝나고나서도 찝찝함은 계속 가시지 않았다.
집에 와서 다시 ‘욜로’를 검색해봤다. ‘욜로 : 현재를 중요시 여기는 태도. 취미생활, 자기계발 등에 더 많이 투자하는 특징이 있다. 이들의 소비는 단순히 물욕을 채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충동구매와 구별된다.’라고 적혀 있었다.
난 취미생활과 자기계발 빼면 시첸데. 내가 진짜 욜로인 걸까? ‘이상‘의 실현? 스스로 이상주의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이상’이라는 단어에도 멈칫했다. 이상이 욜로와도 연관있다니. 평소 나에게 욜로는 부정적 상이었다. 여행 가고 쇼핑만 히는 철부지거나 뒷날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해 도리어 위태롭고 불안한 그런 사람들. 그게 나라니, 근심에 잠겼다.
그런데 모순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중시하는 태도를 가진 욜로족은 그 누구보다도 미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그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욜로, ‘현실’에 집중해 돈에 목적이 있는 사람은 그 반대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보아하니 아무도 욜로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를 모른다. 인터넷 사전에 나와 있는 욜로의 정의도 믿을 만한 게 못 되는구나. 다시 돌아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욜로,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자’라는 모토로 돌아가보기로 했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욜로에 대해 이 정도까지 생각하고 말했을 터.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태도를 꼬집어서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내 인생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다.
현재 내 계획은 이렇다. 자취방을 계약한 2년 동안 프리랜서로 성장해 독립할 수 있는 수준을 만든다. 또한 그 시기에 회사에 다니지 않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해 영어, 중국어 등의 실력을 쌓고 글쓰기, 번역과 같은 기술을 습득한다. 2년 후 여행을 다니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확보하고, 또 여행을 통해 글쓰기와 번역 기술을 발전 향상한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에는 남들 한 번씩 다 다녀온다는 해외여행도 아직 나간 적이 없다. 안 가고 싶어서 안 간 게 아니라, 아직 내가 경제적인 상황이나 다른 여건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참고 미뤄두었다. 긴 여행을 가기 전, 커리어를 조금 더 쌓아두기 위해서, 돈을 조금 더 모으기 위해서.
그 전의 삶을 문제 삼는다면, 내가 남들보다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갔던 건 인정한다. 지금도 앞으로도 긴 여행을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 일은 단순 소비에 그치는 게 아닌 나의 커리어가 되었다. 나는 여행으로 여행사에 취직했고, 여행 책 한권을 냈으며, 여행을 다니며 일을 하는 프리랜서 일감을 얻었다. 물론 그중 계획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런 내게 도대체 사람들은 왜 욜로라는 수식어를 붙이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들은 나의 이런 구체적이고 나름 치밀한(?) 계획은 몰랐을 것이다. 그저 인스타를 보면 매번 한량같이 여행이나 다니고, 운이 좋아 관련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것도 반은 맞는 말이지만.
그리고 솔직히 나에게 욜로라고 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없진 않다. 확실히 나는 ‘내 집 마련’과 ‘노후 준비’를 위한 구체적 플랜이 취약하다. 이에 대한 아이디어는 최근까지만 해도 없었던 게 맞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자 서서히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이때 얼마를 모아서 얼마를 만들어 언제 집을 사야 지는 아니지만 내게도 막연한 계획은 있다. ‘내 집 마련’은 수도권이 아니라 지역에 할 것. 그리고 ‘내 집 구매’가 아닌 ‘내 집 만들기’를 할 것.
부모님 노후 준비는 나도 지금 방편을 찾고 있는 중이다. 우선 부모와 나는 별개라는 전제를 가져갈 거다. 한국 사회는 부모와 자식 간의 유착이 너무 심하다. 그들을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독립적으로 대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날이 올 터. 지금처럼 적은 돈으로 적게 소비하는 생활은 아직 나 혼자만 나를 책임질 때는 문제 되지 않지만, 내가 그들을 돌보고 책임져야 할 때는 어느 정도 수익을 확보하고 모아둔 자금이 있어야 한다.
주식을 해야 하는지 부업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파이프 수익을 늘릴까 고민이 많다. 결론은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수익에 대한 파이프라인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이후에는 열심히 돈을 벌고 모으려고 한다. 그 기간은 5년 정도로 생각 중이다. 35살까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하고 그 뒤에 돈을 모아보겠다고.
30대로 접어든 지금, 돈에 대한 중요성을 나도 서서히 알아가는 중이고 자본주의를 욕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좋은 쪽으로)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인식이 든 만큼 내 삶의 경제적 구조에도 변화가 있을 거리라는 예감이다.
그럼에도 나는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싶다. 세상이 옳고 그르다고 하는 기준에 끼워 맞추는 게 아닌 도전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언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느 때 어떤 걸 이뤄야 하고 가져야 한다는 명제는 한국 사회에서 유독 심하다.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나는 다른 대답을 내놓고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대안적인 삶을 살아낼 것이다.
내겐 현재의 행복도, 미래의 행복도 당연히 중요하다. 확실한 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면서 미래의 행복을 담보하고 싶지 않다. 만약 누군가 내가 현재의 행복을 중시한다는 이유로 나를 ‘욜로’로 규정한다면 나는 누가 뭐래도 ‘욜로’다.
현재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미래에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는다. 맛있는 것도 먹어본 사람이 잘 알듯, 행복도 오늘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내일도 행복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행복이란 갑자기 뚝 떨어지거나 생기는 게 아니다. 오늘의 내가 쌓여 미래의 내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오늘의 행복한 내가 곧 미래의 행복한 나로 이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