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수업일지

느린학습자와 경계선 지능장애

by 안해


작년 상반기에는 독립출판에 열과 성을 쏟았다면 하반기에는 대안학교 수업 준비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가 견학했던 간디학교와는 다르게 도시형 대안학교들은 조금 더 다양한 친구들이 온다. 중도 입국 청소년, 느린 학습자, 정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 등 제도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제도권을 거부하거나 혹은 거부당한 친구들이다.

처음에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면접을 보러 갔다. 대안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도리어 내게 수업이 가능할지 조심스레 물었다. 새로운 도전이었고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결핍이 있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외면이 아니라 나는 늘 그런 이들을 위한 글을 쓰고 일을 하고 싶었다. “제가 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확신은 없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다”는 답을 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분량을 알리고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보였다. 그들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활짝 웃으며 함께 일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대답에 나는 기쁘기보다 불안이 더 앞섰다.

비인가 대안학교 특성상 커리큘럼도 자유롭고 교재도 딱히 없으니 교사인 내게 권한이 무지막지하게 있었다. 나는 제도권 교육에서 누구보다 성실히 몸 담았던 학생이었고 어쩌면 그 교육의 수혜자이기까지 했다. 학창 시절 반장이나 부반장을 도맡았고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나와 큰 문제없이(?) 취업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제도권 모범 학생에 그간 교육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너무나 막막하고 막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르치는 일을 어릴 적부터 좋아했고,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을 내미는 일을 하고 싶었고, 나의 전문 분야를 살려 강의를 할 수 있었으니 일단 해보는 수밖에.

그나마 대학에서 사회에서 또 다른 공동체들에서 배우고 습득한 것들이 있어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수업을 짜는 건 흉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17~18살 고등학생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본적인 맞춤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든가 말이 어눌하고 산만하다. (우울증) 약 기운으로 인해 수업 시간에 졸거나 몸과 마음의 컨디션 때문에 학교에 결석한다든가 하는 이슈가 많다.

느린 학습자라는 부드러운 명칭이 생기기 전에는 이들을 경계선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지능이 또래보다 낮지만 장애 수준은 아닌 친구들. 나는 한 번도 이 친구들을 살면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존재하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사회에서 지워진 것이며 감쪽 같이 숨겨진 것일까.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하기 전, 느린 학습자와 관련된 도서들을 찾아 읽고 경계선 친구들이 있는 또 다른 학교에 가서 그들을 만났다.

내 수업의 학생들은 지적 정서적 양면으로 문제를 겪었다. 지금도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아주 어릴 적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고백에 놀란다. 자신의 부족함을 누구보다 느끼고 있으며 학교를, 사회를 따라가는데 힘에 부쳐한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증이 생긴다.

수업에 이어 아이들의 특수성까지 고려하려니 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매주 수업을 준비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내게 주어진 방대한 권한, 같은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면 조급한 마음이 들어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자 하는 욕심, 하지만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겨운 아이들의 상황 사이에서 고민하고 고뇌했다.

더욱 수업이 어려웠던 이유는 나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남의 시선을 극도로 신경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말의 상황이 불편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택한 것인데, 강의는 100퍼센트 말로 구성된 일이었고 타자에게 그런 나의 모습을 보여야 했다. 아무리 아이들이고 적은 인원이라 하더라도 매주 누군가 앞에 서는 일은 때로 끔찍하게 느껴졌다. 수업을 계획하고 구성하는 일이 힘든 건지 대중 앞에 서는 것이 힘든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나의 어려움을 호소하면 대개 ‘그래도 재밌지?’ ‘보람이 있지?’라고 물었다. 아무래도 가르치는 일에는 보람이 확실하니까. 원하는 대답을 기다리는 상대 앞에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보람을 느낄 새도 없이 괴로움만 가득했다. 수업 준비, 그리고 수업의 반응과 성과에 따라 일상이 무너지고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려는 이유는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고, 나 또한 괴로움 속에 성장하고 배우고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고, 아주 때로 보람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좀 아이들의 상황과 특성을 알았는데 올해엔 또 아예 새로운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아이들의 수도 많아지고 특수성도 더 강한 친구들로 전해 들었다. 오히려 이전 학기는 양반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난관이 예상된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내게 그들과 함께 할 기회가 생긴 이상 그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야 하는 어렴풋한 사명 같은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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