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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해 Jul 15. 2023

요즘 나는 나의 신을 의심한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를 읽고


오랜만에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었다. 글쓰기와 책 읽기에 대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살짝 과도하다과 느껴져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요즘은 책 읽기에 대한 효용을 의심 중이기 때문이다.

책을 의식적으로 읽기 시작한 때부터 줄곧 이십여 년 간을 활자에 빠져 살았다. 각 사람에게는 숭배하는 자신의 신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누구에게는 돈, 누구에게는 관계, 누구에게는 사랑이라면, 나에겐 그것이 책이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 나는 나의 신을 의심하고 있다. 물론 나는 그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예정이지만 그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싶은 것이다. 나는 나의 신을 존재 자체로도 사랑하지만 내 삶을 잘 살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기도 하다. 결국 책 이전에 삶이 있는 건데,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느낄 때 위기감을 느낀다.​


나는 스스로 밥도 잘해 먹고, 청소도 잘하는 생활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평온한 관계를 맺고 싶고,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하지만 집안일을 잘하지 않거나 불편한 관계를 피해 책을 읽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한다면(어느 면에서는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과 글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관계와 건강과 생활을 등한시한다면(물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 포기하거나 타협할 필요는 있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온전한 삶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책을 읽음으로써 인지의 확장은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행동으로까지 가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요즘은 책을 좀 덜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내가 이것을 소화하고 흡수하는데 힘이 부쳐 과식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인지적 과식. 이론적으론 충만하지만 내가 사는 발 붙이고 사는 현실 세계에 효용이 없으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지, 그저 말장난이나 말노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나는 앞으로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책과 글을 숭배하겠지만 그 이전에 삶이 있다는 걸 놓치고 싶지 않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나의 생활과 신념을 모두 지켜내려면 부지런히 살아내야 할 것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자랑스러워하시지만 나의 독서 병은 대개의 경우 비난이나 경멸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매일 읽기만 해.”
“쟤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줄을 몰라.”
“저건 소일거리 중에서도 가장 나태한 소일거리야.”
“저건 게으른 거지.”
그리고 특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쟤는 ……을 하는 대신에 읽기만 해.”
무엇을 하는 대신에?
“더 실용적인 것은 많잖아. 그렇지 않아?”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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