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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추어 배우입니다.

by 안 희



지안 : (멋쩍어하며) 아.. 저는.. 비전공자예요.

전공자 : 아하~ 그러시구나. 근데 학교에서 배우는 거 별거 없어요. 현장이 중요하죠.



내 소개를 들은 전공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학교를 다녀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 말이 사실인지 알 길이 없었다. 위로인지 진심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나는 내심 진심이길 바랐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배우는 것이 없어도 얻어지는 게 많은 그 시절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의 대답이 묘하게 만족스러웠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연기는 무료했던 내 인생을 단숨에 바꿔버렸다. 매일 소풍에 가는 것 처럼 설레었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모든 것이 신기했다. 심장이 뛰는 걸 매일 느낄 수 있었다. 연기가 노는 것보다 재미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가족들 역시 믿지 않았다.



오빠 : 너가 진짜 좋아하기는 하나보네. 맨날 이거 했다 저거했다 하더니, 이번엔 좀 가네?



평생 속으로만 삼키던 감정을 터뜨리는 일은 황홀했다. 예측하지 못한 반응을 하는 내 모습이 시원했다. 나는 그 쾌감에 중독되어 갔다. 밥도 잊고 밤도 잊으며 “다시, 다시”를 반복했고 1년, 2년.. 연기를 향한 사랑은 나날이 깊어져갔다.


현실은 사랑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백번은 넘게 오디션에서 떨어진 뒤에야 데뷔를 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한 계단을 힘겹게 오르듯 필모를 쌓아갔다. 그렇게 살다보니 내게도 그런 날이 찾아왔다. 영화관에서만 보던 선배들이 옆자리에 있는 그런 날이,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 그런 날이 말이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연기생각 뿐 이었다. 나는 늘 간절하고 절실했다. 할 줄 아는 노력이 진심을 다하는 것 뿐이었기에 들이밀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주저앉고 돌진했다.


“선배님.. 어떻게 하면 (저도) 연기를 (선배님처럼) 잘 할수 있을까요?”


내게 그 비법을 제발 알려주세요, 라는 마음을 담아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이런 식이었다.


“상상력이 중요해”

“삶을 잘 살아야지.”

“공감능력이 좋아야지.”



‘간장 두 스푼, 설탕 조금, 마지막에 간은 레몬즙으로 하세요.’ 와 다를게 없는 비법전수 였지만 그 당시의 나는 이 모든게 가능성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건지는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건지는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았다. 현장에서 연기를 배운다는 건 이런 거였다. ‘정신차려라. 그 누구도 니 밥을 떠먹여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연기라고는 진짜로 기뻐하고 진짜로 슬퍼하며 진짜로 호소하고 진짜로 미워하는 것 뿐이었다. 문제는 이 진심이 화면에 나오지 않는 다는 데 있었다. 현장에서 진정성을 인정 받았음에도 화면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연기를 보는 티비 밖의 내가 그 진심을 느낄 수 없었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촬영한 가슴 애절한 장면은 거의 편집이 되어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아파했는데 어째서 짤릴 수가 있는거지? 속상해 하는 나에게 피디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울어서 잘랐어. 너가 그래도 여배우인데 너무 울더라.”



위로인지 진심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알게됐다. 연기는 하는 것과 보여지는 것이 다르다. 진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연기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프로와 아마추어는 다르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연기를 사랑하던 그때의 나를 찾아가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연기를 하는 너 자신을 사랑하는 걸 빨리 멈추도록 해.”


나는 지난 10년을 지불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연기는 나를 위로하는 일이 아니었다. 증명하는 일도 아니었다. 배우는 자신의 심장이 아니라 관객의 심장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프로니까.



우리가 잘 아는 아마추어 (amateur)는 라틴어 '사랑하다' (amare)라는 동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는 완벽한 아마추어 배우였다. 그리고 배우로 산 13년 중 가장 순수했던 그 시절의 나를, 이제야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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