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맡겨진 일을 잘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6권 2.

by 안현진


네가 네게 맡겨진 의무를 행할 때에는 춥든지 덥든지, 졸리든지 푹 잤든지, 욕을 먹든지 칭송을 받든지, 죽어가든지, 또는 그 밖의 다른 어떤 상황이 닥쳐도 개의치 말고 행하라. 죽는 것도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에, 죽음을 눈앞에 두었더라도 네게 맡겨진 일을 잘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6권 2



신문을 보다가 《불멸의 이순신》을 쓴 김탁환 소설가의 신간 소식을 알게 되었다.

정해박해 사건을 다룬 이야기라 꼭 읽어보고 싶었다.

마침 월급날이었기에 시리즈 세 권과 동생이 추천해 준 시집 한 권을 주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원했던 책도 한 권씩 주문했다.

내일 도착 예상이라 좋으면서도 이 책에 밀려날 다른 책이 걱정되었다.

저녁에는 예정에 없던 서점에 가서 시집 두 권을 더 사 왔다.

사 온 시집을 읽다 잠이 들었다.

서울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남편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덩달아 나도 일찍 일어났다.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 준 뒤 책을 읽었다.

책은 재밌어서 계속 읽고 싶은데 눈꺼풀이 무겁다.

30분만 자고 일어나려고 7시에 누웠다.

7시 30분 알람을 끄고 8시가 다 되어 눈을 떴다.

아직 자고 있는 아들 둘을 깨우고 빵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등교 후 은서가 일어나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빨래와 재활용 등 집안일을 하고 놀고 씻고 스우파2 미영상분을 보고 나니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아아.. 은서야 엄마 슬퍼.."

"왜에? 은서 땜에?"

"으응? 아니."

"오빠 땜에?"

"아니."

"아빠 땜에?"

"아니."

"왜에~ 왜 슬퍼~"

오전이 금방 지나갔다는 데에, 오전 동안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낸 것 같지 않은 데에서 오는 허무함에 대한 넋두리였다.

그걸 세 살 딸이 받아주다니, 자기 때문이냐 바로 묻는 딸이라니.

옷장에서 겨울용 콩순이 드레스를 꺼내 입은 딸이 말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런 딸을 안으며 생각했다.

'그래, 네가 옆에 이렇게 있는데... 슬플게 다 뭐야. 오전 시간을 교훈 삼아 오후를 잘 보내면 되지.'

어제 주문한 책은 이미 도착했지만 뜯기는 조금 미루기로 했다.

지금 내게 맡겨진 일은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부지런히 읽고 쓰는 하루를 채워가는 것.

새로운 일이 맡겨지기 전까지는 이 일을 충실히 해 나갈 것이다.

그래, 그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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