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6권 19.
어떤 일이 네가 해내기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경우에는, 그 일을 다른 사람들도 해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일은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너도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6권 19
이틀 전 밤, 혼자 영화 한 편을 봤다.
스웨덴 영화 <노웨어>다.
식량과 자원 부족으로 인해 스웨덴에선 임산부와 아이들을 죽이는 정부가 들어선다.
아수라장이 된 나라를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밀입국을 시도한다.
만삭인 아내 미아와 남편 니코도 컨테이너에 몸을 싣는다.
중간에 두 트럭으로 나눠지면서 헤어지게 되고 미아가 탄 컨테이너는 검문 장소에서 걸려 몰살당한다.
혼자 살아남은 미아는 이번엔 폭풍우를 만난다.
배가 뒤집히면서 컨테이너는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게 된다.
안에 실린 식량과 물건들로 며칠은 버텨보지만 더 이상은 힘들다 여기고 목숨을 끊으려 한다.
그때 이틀 동안 느껴지지 않던 태동을 느끼고 아이를 위해서라도 살려고 한다.
컨테이너 안에서 출산을 하고 아기를 돌보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아이를 위해 살려는 엄마의 가혹한 생존기였다.
한밤에 근무 중인 남편과 잠든 아이들이 몹시 보고 싶어지는, 존재만으로도 감사해지는 감동적인 영화였다.
훌쩍훌쩍 울다 으앙 크게 울음이 터질 만큼 감정 이입이 많이 됐다.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할 수 없는 이유보다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라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라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봤다.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어떻게 저렇게까지 해.' 하는 일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가 될 수 있다.
컨테이너에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은 남편이 미리 생각해 둔 노아라고 지었다.
노아를 보며 네가 엄마를 살렸다고 말하는 미아.
삶의 의미는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하지만 자식과 같은 타인이 되기도 한다.
<조용한 희망>의 알렉스와 <비커밍 아스트리드>의 아스트리드처럼.
헤어질 위험 없이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 속에 살아간다.
<소울>에서 조가 말했듯이 매 순간순간을 살아가자.
그러면 세상은 온통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로 가득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