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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각기 자신에게 할당된 자리에서 우주에 내재된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8.

by 안현진

만물은 각기 자신에게 할당된 자리에서 우주에 내재된 하나의 동일한 질서를 이루고 있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8 중에서



수영하고 늦게 올 줄 알았던 남편이 근무 끝나자마자 바로 왔다.

오후에 족구 약속도 있고 팀 회식도 있다고 한다.

전날 택배로 온 자전거 페달부터 교체해 본다.

그 후 자려고 누운 남편이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얘기한다.

의사와 싸울 뻔했다고, 세 건의 출동이 모두 같은 환자였고 보호자, 의사와 연관되어 있었다.

집에 와서 본모습은 기분 좋음이었는데 근무 중엔 이런 힘든 일이 있었구나 싶으니 짠했다.

아침부터 허무주의에 휩싸여 있던 내가 배부른 이상주의자처럼 느껴졌다.

일에 대한 고민이 잦은 요즘, 내 자리는 어디일까 생각을 많이 한다.

저번에 남편과 ‘모든 일엔 장단점이 있다’는 얘길 하면서 ‘세상에 장점만 있는 일도 있을까?’란 궁금증이 생겼다.

내 의문에 남편이 답했다.

“그러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해.”

보람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도 힘듦이 있다.

사람 있는 곳엔 갈등도 존재한다.

10년 가까이 때론 말이 안 통하기도 하고, 대화가 되기도 하는 아이들과만 깊은 관계를 유지해 온 나.

I(내향형) 성향이 100%에 가깝게 나오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어제는 남동생과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다.

역사 분야 박사인 친구도 I 가 99% 나오는데 50명 넘는 학생들 앞에서 강의도 하고, 꽤 인기 있는 유튜브도 운영한다고.

역사를 알리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기에 이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 서고, 말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비록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일 지라 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이 1순위기에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일은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내게 1순위는 무엇이고, 이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감내할 수 있는가.

내게 할당된 자리는 어디일까.

물음표만 잔뜩 던지는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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