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24.
목욕할 때에 생겨나는 비누 거품과 땀과 때, 그리고 기름기가 떠있는 물을 보면, 너는 역겨워하지만, 인생의 모든 부분과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24.
아침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민 뒤 책상 앞에 앉았다.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국제 발신, KB 카드, 본인이 아닐 시 전화하라는 문자였다.
잘못 누르기라도 할까 봐 얼른 지웠다.
이런 문자를 받을 때마다 10년 전 그날이 떠오른다.
첫째가 태어나기 두 달 전 겨울이었다.
그날따라 남편은 늦게 왔고,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다.
컴퓨터를 쓰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금감원, 사기 연루, 조직 등 난생처음 듣는 말로 혼을 빼놓았다.
전화도 끊지 못하게 하고 컴퓨터 원격제어 수락, 근처 농협 ATM기에서 돈을 한 통장으로 모으는 등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수법에 당했다.
만삭에 추운 겨울날이었다.
내가 당했구나 생각하자 넋이 나갔다.
하필 그때 계모임 총무여서 계비 돈도 다 들고 있었다.
일찍 알아채고 은행 출금을 막은 덕분에 모든 돈이 빠져나가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일부 돈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내가 모르는 번호, 070, 02 등 이상한 번호로 걸려오는 건 일절 받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더욱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에 진저리 쳐진다.
인생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밝은 것만 보며 살면 좋겠지만 그러기란 어렵다.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이겨낼 면역력도 없다.
난생처음 당해보는 사기에 마음고생도 심했었지만 조심하고 한 번 더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괴로움과 어려움 앞에 잃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얻는 것도 분명히 있다.
나를 탓하며 괴로워하던 시간을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준 가족 덕분에 털어낼 수 있었다.
비난 대신 걱정하고, 질투 대신 축하를 해주는 이가 곁에 있다면 잘 산 인생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