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30.
원로원에서나 개인에게 말할 때 직설적으로 진솔하고 명료하게 말하고, 빙 둘러서 애매모호하게 말하지 말며, 건전한 말을 사용하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30.
개학날, 첫 가정 통신문으로 학생 기초 조사서를 받아왔다.
학생 이름, 보호자 이름, 비상 연락망, 집 주소 외에 급식 시 요청 사항이나 담임선생님께 전하고 싶은 말을 쓰는 칸이 있었다.
은서를 재운 저녁, 거실 책상에 앉아 빈칸을 하나씩 메꿔 나갔다.
조용하게 혼자 쓸 수 있는 시간까지 일부러 기다렸다.
담임선생님께 전하고 싶은 말을 쓸 때는 오래 걸렸다.
아토피가 심했었던 점, 아이 성격과 특성을 남편과 얘기하며 끄적였다.
이를 다시 매끄러운 문장으로 만들고, 중복되는 단어나 접속사는 없는지 반복해서 읽었다.
연습장에 여러 번 고쳐 쓰고 정리한 뒤에야 옮겨 적었다.
학생 기초 조사서는 담임선생님께 1년 동안 아이를 맡기고 부탁하는 학부모의 첫인상이라 생각한다.
글자 하나에도 마음이 담긴다 여기기에 수정테이프 칠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한 자 한 자 적었다.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다.
글은 마음에 들 때까지 신중하게 고쳐 쓸 수 있다.
느리지만 편안하고 만족스럽다.
반대로 말은 빠르지만 불안하고 만족감이 충만하지 않다.
혹시나 실수한 게 없는지,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지 않을까 후회될 때가 많다.
말을 해야 하는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글쓰기의 장점은 생각을 정리하는 연습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누군가 질문을 하면 잠깐 버퍼링은 걸리지만 내 생각을 차분히 얘기할 수 있다.
자주 듣는 말 중에 "아들보다 딸이 더 낫죠?"라는 질문이 있다.
일요일, 집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도 들었었다.
"음... 아들보다 딸이 더 좋다! 이런 것 보다요... 아들에 대한 감정이 막내인 딸과 남다르달까요? 선우, 윤우 키울 때는 저도 어렸었잖아요... 그래서 아이랑 제가 같이 큰 느낌이라 조금 특별한 감정이 있어요. 은서는 선우, 윤우랑 터울이 나니까 큰 애들과 같이 은서를 키우는 것 같고요..."
아들보다 딸이 더 좋다는 감정을 한참 후엔 느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내게 아들은 선우, 윤우 그 자체다.
그래서 선우, 윤우가 딸인 은서보다 못하다 말을할 수 없다.
이러한 생각도 아들과 딸, 삼 남매 각자에 대한 감정을 들여다보고 글로 계속 써 본 덕분이다.
학생 기초 조사서가 담임선생님께 어떻게 가닿았을지 모르지만 내겐 두 아들을 짧은 글로 담았기에 애틋함으로 기록한 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