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34.
잘려 나오거나 따로 떨어져 나왔다가 또다시 거기로 돌아가서 결합되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신이 오직 인간에게만 수여한 특권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34 중에서
육아는 반강제적이자 반자발적으로 사회로부터 나를 단절시키고 고립시키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누군가를 만날 시간과 체력이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비교로 인한 감정 소모가 크다였다.
외적으로 나를 꾸밀 여유도 없었고, 사회생활에 대한 경력도 일시 중단되었다.
또래 친구들만 보아도 한창 꾸미고, 사회 경력을 하나씩 쌓아 나갈 때라 비교가 많이 되었다.
온라인상에선 슈퍼우먼, 팔방미인 같은 아내, 엄마들이 어찌나 많은지 스스로가 부족해 보였다.
내가 누리는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큰 건지 모르고 외부로부터 만족을 얻으려 했었다.
핸드폰부터 스마트폰에서 학창 시절 쓰던 3G 폴더 폰으로 바꿨다.
친구와의 만남도 자제하고, 카톡을 비롯해 SNS도 모두 끊었다.
시끌시끌하던 세상 소식으로부터 멀어지니 음소거를 한 마냥 갑자기 조용해졌다.
육아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내적 성장이 많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전처럼 독서에 몰입이 안 된다 느낄 때, 글쓰기와 육아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때, 스마트폰에 휘둘린다 생각이 들 때 한 번씩 그때가 그립다.
지금은 예전처럼 극단적인 단절을 할 수가 없다.
SNS가 주는 의미도 달라졌거니와 이젠 조금씩 사회로 나갈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틀 전 아들 육아 강연을 들어서인지, 두 아들 키울 때가 많이 생각났다.
어제는 연년생 형제 사진을 모아 짧은 영상도 만들어 보았다.
아이들과만 지내다 보니 내향적 성향이 더욱 강화되기도 했지만 나는 좋았다.
내게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질 그 시기가 필요했었다.
인생 목표를 새로이 잡을 만큼 의미가 컸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귀한 시간이었다.
결혼과 육아라는 큰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다시 사회로 나가는 일이 내겐 알을 깨고 나오는 것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도 알을 깨고 나올 힘이 있다고 믿기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믿음은 육아라는 환경과 나를 파고든 시간 덕분에 단단하게 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