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남기는 사람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37.

by 안현진

그 조문객들이 죽고 나면 그들이 조문했던 자들에게는 무슨 할 일이 남아 있을까. 이 모든 것이 가죽 부대 속에서 피와 살이 썩어 문드러져서 악취를 풍기는 것일 뿐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37 중에서



<파묘>를 봤다.

엄마가 왔던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심야 영화로 보고 왔다.

엄마를 비롯해 <파묘>를 본 주위 사람들 모두 재밌다고 했었다.

조상의 묫자리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나오면 안 될 것이 나왔다는 정보만 기어코 유지한 채 무사히 관람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재밌다는 말과 함께 여러 생각이 오갔다.

역사, 조상, 묘, 죽음, 삶, 가족, 사람, 자연, 우주…

남편은 죽으면 잘 묻어 달라고, 제사도 지내 달라고 한다.

아이들 곁에 머물면서 지켜줄 거라고 하길래 나는 미련 없이 떠나지 뭘 이승에 남겠다 그러냐고 웃었다.

지금은 죽음이 멀게 느껴지지만 가까이 느끼는 때가 오면 초연할 수 있을까.

내 몸이 다시 흙으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덤덤하게 여길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장할 때마다 묘가 묻힌 흙을 먹어 보던 풍수사 상덕(최민식)의 모습이 떠오른다.

육체가 썩어 사라질 때, 악취보다 좋은 향이 날 수 있는 땅 자리도 중요하지만 살아생전 그 사람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향 또한 중요하다.

나도, 나를 조문하는 이도 모두 영원히 살진 않는다.

하지만 서로의 기억 속에 향기를 남기는 사람이 될 수는 있다.

생과 사를 마음대로 정할 수 없어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스스로 정한다.

나는 오늘, 오늘이라는 하루에 어떤 향을 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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