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47.
어떤 외적인 일로 네가 고통을 받는다면, 네게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외적인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네 자신의 판단 때문이기 때문에, 너는 즉시 그 판단을 멈춤으로써 고통을 없앨 수 있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47 중에서
새로운 것을 할 때 걱정과 두려움이 많다.
낯선 것은 확신이 없기에 경계한다.
익숙한 것을 편하게 여기고, 크게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음날 서울 같은 장거리 일정이 있으면 거의 잠을 자지 못한다.
놀러 가는 목적이어도 차 시간을 놓칠까 봐 일찍부터 알람을 맞춰 놓고, 여유 있게 터미널에 가 있어야 안심이 된다.
서울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낯선 서울 땅,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 속의 나.
철저히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서울에 온 목적이 무엇이든 집과 아이들이 있는 내 일상으로 얼른 돌아가고 싶다.
사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을 들으러 갈 때조차 떨려할까.
책으로만 만나던 작가님을 실제로 만난다는 설렘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내 마음은 그 일에 비해 과할 때가 많다.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다한다는 좋은 면이 있지만, 새로운 것을 두려워한다는 안 좋은 면도 있다.
오늘 필사 문장처럼 내게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나의 판단과 생각 때문일 때가 대부분이다.
막상 해 보면 그렇게까지 마음 졸일 일도 아니었는데, 해 보길 잘했어, 가 보길 잘했어한다.
알을 깨고 나오는 건 스스로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내가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밖에서 깨어주면 후라이가 될 뿐이라는 글을 본 적 있다.
안 해본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한 나만의 두드림이다.
경험만큼 귀중한 게 없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
시행착오도 내 경험으로 온전히 남기에 실패든 성공이든 도움이 된다.
낯섦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지, 귀인을 만날지 누가 알겠는가.
내 두 발로 가 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