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3.
죽음을 멸시하지 말고 환영하라. 죽음도 자연의 뜻 가운데 하나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3 중에서
“엄마~ 오늘 비 와?”
“안 올 것 같은데?”
“으음~ 같은데지?”
“안 와~ 오늘 날씨 좋아~”
오늘은 방과 후 교실 축구 수업이 있는 날이다.
이제는 윤우 못지않게 나도 축구하는 날은 비가 오질 않길 바란다.
장난치며 우당탕탕 두 아들이 나갔다.
아침 설거지를 하려고 창문을 열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바람도 쌀랑하다.
어휴 윤우 옷을 너무 얇게 입혔네, 오늘 비 오면 어쩌지, 선우도 숲 체험 수업한다고 기대하며 갔는데….
오늘 신문을 펼쳤다.
7살 쌍둥이 엄마 무용가가 장기기증한 기사를 봤다.
자던 중 심정지가 와 뇌사 상태가 됐다.
가족은 어린아이들에게 엄마가 좋은 일을 하고 떠났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다른 누군가를 살리고 그 몸속에서라도 살아 숨 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기기증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초등 중등 수업과 여러 대학에서 무용 강의도 하고, 동시에 박사과정도 밟고, 쌍둥이 육아도 병행한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쌍둥이 두 아들을 두고 갑작스레 눈 감게 된 엄마와 엄마, 아내, 딸의 자리를 크게 느낄 가족들은 어떠할까.
죽음을 자연의 과정 중 일부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안 돼.’라고 하지만 나중에는?
‘이제 조금 편해졌는데… 애들 다 키워 놓고 내 인생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하지 않겠는가.
죽음은 언제나 아쉽고 두려운 일이다.
끝이 예견된 죽음도 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죽음도 많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커 있는 모습은 보고 눈 감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뱃속에서 나온 세 아이가 나보다 커지는 모습은 보고 눈 감을 수 있기를….
이러한 소망도 누군가에겐 과분한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숲 체험이 재밌었다는 선우, 반팔만 입은 채 다녀왔습니다 말하며 들어온 윤우.
비도 오지 않았고, 두 아들도 즐겁게 학교생활을 보내고 왔다.
그리고 옆에는 눈만 맞추면 웃는 딸이 있다.
옆에 있고,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거였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을 볼 수 있는 오늘 하루가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