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9.
인간에게서 완전히 단절된 인간을 찾는 것보다는 흙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흙을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9 중에서
<기생수>를 봤다.
일본 작품 원작인데다 상당히 징그러운 비주얼에 볼까 말까 망설였다.
오로지 구교환 배우와 연상호 감독 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이틀 만에 다 봐버렸다.
인간에게 침투해 뇌를 잡아먹고 몸을 차지해 버리는 기생 생물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인 척 행동하지만 그들은 괴물일 뿐이다.
같은 종족끼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묻는다.
“동족인가.”
그들은 인간처럼 조직을 만들고 인간 세계에서 세력을 뻗쳐 나가려 한다.
자신의 야망과 권력을 위해 동족을 배신하는 건 인간이나 기생 생물이나 닮아 있었다.
기생 생물과 공존하는 주인공 수인(전소니)은 혼자다.
어릴 적, 가정폭력으로 도망간 엄마는 새 가정을 꾸리고 딸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
아빠의 폭력을 혼자 감당해 내던 열 살 수인은 경찰에 아빠를 신고한다.
그런 수인을 사람들은 아빠를 신고한 딸이라며 수군댄다.
10년 전 오늘, 병원에서 데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뉴스에 나오는 비현실적인 속보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말하고, 누군가는 그만 잊고 싶다고 말한다.
그 해에 결혼해서 벌써 10년이 흘렀다.
아이 셋 엄마가 되어 바라본 그날의 참사는 더욱 가슴 아프다.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차오르는데 유가족의 마음은 어떠한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하이디(기생 생물인 수인)에게 살아 있다고만 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강우(구교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수인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많지만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 방법을 찾는 게 수인이 생존하는 길이었다.
도망가거나 고립되는 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다 말할 수 없다.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 무관심하고, 잊을 권리를 앞세움으로써 쉽게 하는 말들이 그들을 고립시키고 더욱 힘들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10년 전 오늘을 잊지도 않을 테지만 잊을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