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엄마의 이야기_3월 22일 이야기>
‘내가 애들한테 너무 강압적인가?’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5년 전 자신 있게 다정하다, 허용한다라고 써놨다니.
‘배려 육아’가 모토였다.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수용해주려 노력하던 때였다.
“지금도 그때만큼 노력해?”라고 묻는다면 “응.”이라고 답할 자신이 없다.
내가 내 행동을 봐도 ‘배려 육아’와는 거리가 멀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 행동의 차이가 클 때 괴롭다.
“선우는 언제 행복해?”
“맨날. 나 기분 안 좋을 때 빼고~”
“윤우? 예쁜 얼굴 왜 찡그리는 거야?”
“크오어어어” (정체불명 이상한 소리)
“은서어~”
“엄마아~ 엄마아?” (등 뒤의 이상한 느낌 감지)
키득키득 거리는 큰오빠.
어젯밤 선우랑 자기 전 아기 때 사진을 봤다.
“선우야 이거 지금 은서만 할 때!”
“선우야 윤우랑 여기 소파에서 놀았었는데~”
“선우야 여기 기억나? 우리 2층 집 살 때!”
선우는 블로그에 있는 어릴 적 사진을 보며 웃다 잠들었다.
그 옆에서 나는 한참 더 뒤적여보다 일어났다.
그리고 잠든 아이들을 둘러보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봤다.
‘아깐 그렇게 말하지 말 걸.’
‘화 안 내고 얘기할 걸.’
오빠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막내.
엄마 말을 한 번에 듣지 않는 것에 속 터질 때가 여러 번이다. 그때마다 ‘왜 엄마 말을 한 번에 들어야 하는가’라는 오류도 함께 생각한다.
자신에게 엄격할 때도 있고 관대할 때도 있다.
육아에 있어서는 유독 나 자신에게 엄격하다.
맨날 행복하다는 첫째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웃기는 둘째 그리고 꺄르르 잘 웃는 셋째.
어쩌면 내 생각만큼 나는 덜 터프하고 덜 강압적 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을 아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육아는 그 어려운 걸 해내도록 연습시키는 것 같다.
아이와 나 사이의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