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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May 08. 2024

끙끙 앓으면서 든 생각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30.

사람들이 너를 기억해 주는 것이나 그들 가운데서의 너의 명성이나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들도 네가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30 중에서



어린이날 후유증이었을까.

어제 하루 꼬박 앓아누웠다.

머리가 흔들리고 으슬으슬 추웠다.

타이레놀 먹은 그 순간만 몸을 조금 움직일 수 있었다.

앉기만 해도 머리가 흔들려 종일 누워 지냈다.

아이들 밥도 겨우겨우 챙겨주고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오전에도 내내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아직 아프지만 어제보다 조금 나아졌다.


아픈 동안 은서가 곁에서 잘 있어주었다.

고맙다는 생각밖에 안 들 정도로 보채지도 않고, 자꾸만 잠드는 엄마를 깨우지도 않고, 눈만 마주쳐도 웃으면서.

그런 은서에게서 어릴 적 내 모습도 겹쳐 보였다.

윤우는 놀다가 저녁 즈음에야 들어왔지만 그동안 선우는 은서와 내가 잠든 오후, 거실에서 조용히 놀다 잠이 들었다.

꾸벅꾸벅 졸며 뒤늦게 숙제와 제 할 일 하던 윤우.

울먹였지만 끝까지 다 해서 TV도 보고 게임도 했다.

자기 전, 아이들이 누워있는 내 곁에 다 모여들었다.

풍선 던지기도 하고, 책 이야기도 하고, 어버이날 이야기도 하며 웃었다.

깔깔깔 웃는 세 아이를 보는데 나도 웃음이 났다.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밤새 끙끙 대면서도 아침이면 남편이 올 거란 생각에 힘이 났다.

와서 뭘 해준 건 없지만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이런 게 가족인가 보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기억해 주지 않아도 이렇게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딸로 기억되며 살다 가는 것도 행복하겠다.

아프면서 욕심 하나도 줄어들었다.

소박한 행복 안에서 더 단순화된 행복을 찾게 된다.

바람에 초록 나뭇잎들이 흔들흔들 춤을 춘다.

아빠랑 꼭 같이 보라며 남겨두고 간 어버이날 편지도 미소 짓게 만든다.

모든 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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