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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Jul 23. 2024

[에필로그] <글 쓰는 엄마의 하루>를 마칩니다



© emmanuelphaeton, 출처 Unsplash


글을 쓰다가 ‘그날 내가 무얼 했더라?’ 기억나지 않을 때, 블로그로 들어간다. 앨범형으로 바꾸면 메인 사진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기 계발에 목말랐던 시기, 하루를 열심히 살았던 한 해, 많은 일이 있었던 해…. 그 기록이 블로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가 무얼 했더라 궁금할 땐 일상 카테고리를, 아이들과 어떻게 보냈더라 궁금할 땐 육아 카테고리를 찾아보면 된다. 그럼 원하던 기억도 기록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블로그에서 추억을 더듬어 가다가 10년 전 글을 발견했다. 국제구호활동가이자 작가인 한비야의 책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고 쓴 글이었다.

한비야 작가가 평범한 얼굴이지만 밝고 환한 자기 얼굴이 좋다, 표준 사이즈인 몸집도 마음에 든다, 인생이 괴롭다고 몸부림치며 살기보다 재미있다고 호들갑 떨며 살기로 선택한 자신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 내용이었다.

아직 결혼하기 전인 스물넷의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 나이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어린것도 아니었다. 내년이면 스물다섯 살. 그러면 20대의 중반으로 들어선다. 언제 내 20대 초반이 지나갔을까 싶은데, 30대가 다가올 날도 금방이겠구나! 생각이 든다. 요즘은 자꾸만 내가 나이 들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모습이 추하지 않았으면 싶다. 외모가 아니라, 나이에 묻어 나오는 분위기라든지, 품성이 고왔으면 좋겠다. 미래의 내 모습은 오늘의 내가 결정한다고 하지 않는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난 내가 마음에 들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고 성장해야 함을 매 순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마음에 들어’.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곧 결혼하게 될지 상상조차 못 했다. 10년 사이, 세 아이 엄마이자 글 쓰는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30대의 내가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민이 많고, 걱정이 많다. 때때로 스스로가 부족하고 못났다고 여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나라도 내가 좋다고,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마음만큼은 그대로다.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엄마, 배고파.” 소리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간단히 아침을 챙겨준 뒤 책상 앞에 앉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지? 기침이 안 떨어져서? 늦게 일어나서? 밥 챙기기 귀찮아서? 아이들 잘 못 챙겨주는 엄마 같아서? 오늘 써야 할 글이 막막해서?

모르겠다. 전날 밤부터 갑갑하다. 망망대해에 혼자 표류하는 기분이다.

비가 와서 그러나?

아니다. 외부 상황은 상관이 없다. 내 마음의 문제다.


앙상하던 가지에 잎이 돋아나더니 이젠 초록 잎이 활짝 폈다. 초록 커튼이 드리워진 창밖을 멍하게 본다. 아이 교육, 글쓰기, 가정 경제 등으로 생각이 번져 나간다. 무언가 잘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선우는 말과 행동에 상처를 잘 받는다. 내가 아이에게 화내고 소리치고 짜증 낸 모든 게 영향을 미쳤을까 봐, 혹여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뭔가를 계속했을까 봐 미안하고 걱정된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정서적 지지, 함께 하는 시간, 배려와 공감, 맛있는 밥, 가족의 사랑.

잘 키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육아에 집중하던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데, 오히려 점점 커지는데 왜 내 행동은 다른 걸까.



© marcospradobr, 출처 Unsplash


예전에 쓴 초고를 보는데 한숨이 나온다. 김은숙 작가가 재능이 없으면 치열하게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한 인터뷰를 봤다. 성공한 작가도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하고 있나. 1년 전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본다. 처음부터 새로 써야겠다. ‘그래, 쓰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세 아이는 시끌벅적하다. 숨바꼭질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먹을 것을 챙겨주고, 먹은 것을 치우고, 아이 얘기를 들어주는 사이 막막하던 백지도 조금씩 채워 나간다.


외출하려는데 나만 챙기고 있지 않았다. 쓰던 글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조금만 있다 가자고 했다. 선우가 찾아와 모두 엄마만 기다리고 있단 말에 노트북을 덮었다. 도서관과 마트에 갔다가 집에 돌아왔다. 조금 쉬다가 다시 나가기로 했다. 얼른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고, 글을 쓰는 시간도 소중하다.


전날 내린 비는 흔적도 없이 맑게 개었다. 《난중일기》를 펼쳤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왜군을 어떻게 물리칠지 고뇌하는 장군의 일기를 읽으니, 나의 걱정과 고민은 사사롭게 느껴진다.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하루에 대한, 내가 정한 기간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다짐대로 순탄하게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거나 주저앉는 일이 생겨도 다시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오늘 하루, 내게 당당할 수 있으면 된다. 그렇게 나는 글 쓰는 엄마로 오늘이라는 하루를 차곡차곡 채워 나간다.




⁕ 지금까지 <글 쓰는 엄마의 하루>를 읽어주신 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일상에서 발견한 따뜻함을 글에 담아낼 수 있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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