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엄마의 이야기_3월 29일 이야기>
“나에게 직언을 하는 사람” 보자마자 동생이 떠올랐다.
두 살 아래 남동생과 통화하면 한 시간은 기본이다.
글쓰기, 책, 영화, 집, 인간관계, 유년 시절, 휴대폰, 노트북, 옷 ….
소재도 다양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다.
동생과 둘이 있으면서 쌓아온 추억도 여러 가지다.
아파트 상가 지하 오락실에서 게임하기, 노래 부르기, 만화 영화 보기, 컴퓨터 게임하기, 비디오·만화책 빌려보기, 근처 사는 사촌동생이랑 놀기, 밤에 포장마차 닭꼬치 사 먹으며 엄마 기다리기, 김치볶음밥 해 먹기 ….
중학생이 되면서 각자의 생활이 생겼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도 곳곳에 있었다.
도서관에 가기, 비디오와 만화책 빌려온 거 보기, 1p, 2p로 크레이지아케이드 게임하기 ….
고등학생 때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엄마가 마중 나와 있었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집까지 가는 길은 5분밖에 안됐지만 어두웠다.
엄마가 못 나오는 날이면 아빠나 남동생이 나왔었다.
괜찮다고, 마중 안 나와도 된다고 했지만 버스에 내릴 때 가족 중 누군가 있으면 안심이 되고 반가웠다.
"여어~~~ 안핸지~~~"
누나 이름을 장난스럽게 부르며 싱글싱글 웃던 고등학생 동생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집으로 가는 짧은 시간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내가 대학생이던 스물두 살 때 남동생이 군대에 갔다. 군대 간 동생만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자식도 아니고 남동생인데 유난이다 할까 봐 남몰래 울었었다.
나의 20대는 동생에 비하면 평탄한 편이었다.
학창 시절도 무난했고, 원하는 과에 가서 학비 걱정 없이 공부만 했다. 그리고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해 일했다.
동생은 자신의 길을 찾는 것에서 방황을 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과 의견이 달랐고 원하는 과에 가지 못했다.
때마침 집이 어려워져 동생은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도 이것저것 했다.
돌아 돌아가기는 했지만 결국 제 하고 싶은 걸 찾아 밀고 나갔다.
지금은 우리 집에서 자수성가한 인물이 됐다.
20대 후반으로 갈수록 어리게만 봤던 동생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동생은 내가 고민하던 문제에 가차 없이 직언을 날렸다. 팩트 폭격기였다.
상처도 받고 의기소침하기도 했었지만 결국엔 다 맞는 말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려도 사회 경험, 인생 경험은 선배였다.
동생과 별 얘기 하지도 않는데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여전히 세상 물정 모르는 여동생 보듯 하지만 서로의 꿈만큼은 열렬히 응원한다.
오빠 같은 남동생이 있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