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힘이 없을 때 몸을 움직이면 힘이 난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1권 17.

by 안현진

어떤 것을 볼 때마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엇으로 변해가고, 변화가 끝났을 때는 무엇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고, 또한 변화는 그 어떤 해악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1권 17.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힘이 없었다.

잠도 자고, 아침도 먹었는데 왜 이러지.

체력과 함께 내 글을 보는 마음도 고갈된 것 같았다.

책상 앞에서 마주한 원고가 엉망진창으로 보였다.

답답하고 막막해하던 그때, 문자가 왔다.

선의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감정과 상황을 덧입혔다.

결국엔 할 거면서 소심하게나마 저항했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봤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했다.

미루고 있던 일이라도 해놓고 저항을 일으키던 일을 하자.

그래서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기를 밀고, 바닥을 닦고, 건조기에서 옷을 꺼내고, 빨래를 널고, 개었다.

운동화도 빨아서 널어놓고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씻고 나왔다.

없는 힘을 내어 몸을 움직이니 힘이 생겼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빨리해야겠다 싶어 저항을 접어두고 실행에 옮겼다.

더 빨리해 버릴걸, 소심한 반항 따위 하지 말걸,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좋게 품었던 마음은 미안함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결심과 다짐은 힘이 없다.

힘을 가진 것은 행동이다.

생각과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면 어느 때보다 변화가 절실하다.

잔잔한 물은 깊다.

내가 가진 것이 얕아서 이리저리 출렁이지만 한 번에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변화를 갈망하고 무엇으로 변해갈지는 오직 나만이 정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다스릴 힘 역시 내 안에서 나온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명절이 다가오면 드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