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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오면 드는 생각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1권 16.

by 안현진

가장 고귀한 삶을 살 수 있는 힘은 혼에 있고, 사람이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것들에 대해 담담한 태도를 취하기만 한다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1권 16 중에서



웃음 버튼이 눌러졌나 보다.

무릎에 앉은 딸이 꺄르르 넘어간다.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표정을 하든, 어떤 스킨십을 하든 깔깔깔 웃는다.

웃음 이모티콘처럼 눈과 입꼬리가 휘어진다.

선우, 은서와 셋이 누워 있다가 침묵 게임을 하기로 했다.

병원놀이할 때 환자 역할을 하며 누워 있고 싶은 마음과 같달까.

눈만 마주쳐도 묵음으로 웃었다.

30분을 그렇게 놀았다.


저녁에 아이들과 산책 겸 서점엘 다녀왔다.

책 한 권씩 사서 돌아오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9월의 시작과 함께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근무, 출장, 교육, 훈련…으로 일정이 빡빡하다.

자전거를 타고 아빠와 아들 둘이 지나갔다.

남편이 같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단 생각을 했다.


일주일 뒤면 명절 연휴다.

어릴 땐 친척들이 모이고 북적북적한 명절이 좋았다.

미혼일 땐 ‘벌써 명절이구나, 이번 연휴는 짧네, 기네.’ 할 정도로 별생각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크게 하는 일은 없어도 명절이란 그런 존재였다.

일상의 큰 이벤트처럼 부담스럽고, 신경 쓰이는 날.

‘이번에도 무사히, 잘 지나가면 좋겠다’하는 마음에 짐을 지우는 날.

지나고 나면 별것 없으면서도 괜스레 긴장하게 되는 날이다.

불편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힘든 건 나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시간 안에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원치 않았던 일은 덤덤한 태도로 넘길 수 있으면 좋겠다.

큰 의미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마음 쓰며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게 의미 있고 중요한 일상은 1년에 두 번뿐인 명절에 있지 않다.

오늘처럼 아이들과 웃고 산책하고 책 한 권씩 사 오며 행복을 느끼는 날들에 있다.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 것일 때에는, 본성에 부합하는 것을 찾으라.’는 말처럼 어떤 상황이든 내 본성에 부합하고 유익한 것을 추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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