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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1권 20.

by 안현진

이성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단지 정의를 행하게 하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라, 신을 공경하고 섬기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기 때문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1권 20 중에서



노트북이 있는 책상 자리에 앉으면 성당이 한눈에 보인다.

바로 옆에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공원이 있어 높은 건물이 없다.

공원과 대로를 건너야 아파트 단지들이 있다.

그 덕분에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다.

십자가 사이에 둥글게 뚫려 있는 원, 십자가와 겹쳐 있는 원이 하늘을 가리지 않고 어우러진다.

낮에는 곡선을 이루는 십자가가 고요히 떠 있다가 어두워지면 암흑 속에 묻힌다.

인위적인 빛을 뿜어내어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마음이 괴롭고 힘든 일이 있으면 성당부터 떠올린다.

연년생 아들 육아와 아이들 아토피 치료로 한참 힘들 때, 통신교리를 이수하고 세례 받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맡기고 주일 미사도 참석하고, 첫 고해성사도 받았다.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혼자 공부해서 모르는 것 투성이라 어렵고, 점점 더 어려운 곳으로만 느껴졌다.

환경보다는 믿음이 부족한 게 더 클 것이다.

가톨릭이란 종교는 그렇게 마음에만 품고 지내게 되었다.

답답한 일이 있으면 창밖의 성당 십자가를 잠깐 바라보다 돌아선다.


엄마와 통화하다가 말했다.

10년 전엔 가능했던 마음과 생각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그게 세속에 물든 것 아니겠냐고 한다.

맞다. 내 생각도 그렇다.

완벽한 행복이란 없는 건데 나는 완벽한 행복을 바라고 있는 걸까.

세속에 물들어간 그 10년 동안 나는 더 나아졌을까, 퇴화했을까.

나아지고 퇴화했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걸까.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고 본성에 부합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자꾸만 내게 의문을 던진다.

이성, 정의, 신, 공동체.

이 네 가지를 내게 접목시켜 본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나오지 않겠는가.


어둠이 오면 십자가는 그 안에 묻히지만 저곳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안다.

이렇듯 때때로 나도 내 안으로 고요하고 깊숙이 침잠하고 싶다.

함께 하고 싶으면서도 혼자이고 싶다.

드러나고 싶으면서도 드러나고 싶지 않다.

내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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