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1권 39.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성적 존재의 혼과 비이성적 존재의 혼 중에서 너는 어느 쪽을 갖고 싶으냐." "이성적 존재의 혼을 갖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바른 이성과 바르지 않은 이성 중에서 너는 어느 쪽을 갖고 싶으냐." "바른 이성을 갖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왜 너는 그것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것이냐." "우리가 이미 그것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너는 그런 이성과 불화하며 싸우는 것이냐."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1권 39.
눈을 떴다.
옆에는 선우가 자고 있고, 옆방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린다.
윤우와 은서가 책상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슬쩍 건너다보니 윤우는 공책에 글을 쓰고, 은서는 색종이를 접고 있었다.
엄마를 깨우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에 고마웠다.
집에 다 와갈 시간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출동이 걸려서 늦을 거라고 했다.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해 전화를 해준 남편이 고마웠다.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치우고, 책상 앞에 앉았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한 자도 못 썼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니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면서 다시 쓰고 싶어졌다.
중간중간 아이들 공부와 할 일을 봐주고, 다시 백지와 마주하기를 여러 번이다.
일찌감치 오늘 할 일을 끝내고 게임도 다 한 선우, 윤우가 장난치는 소리가 들린다.
쿵쿵거리지 마라, 너무 시끄럽다, 뛰면 안 된다… 와 같은 말들을 하다가 혼을 냈다.
밖에 나가 놀라고 했다.
처음에는 싫다던 아이들이 친구들이 있는 걸 보곤 옷을 챙겨 입는다.
날이 추워 긴팔, 긴 바지를 입고 나갔다.
집 앞 놀이터에서 놀라고 내 보낸 뒤 혼자 남았다.
이런 시간은 귀하다.
이 시간 안에 오늘 할 일 중 무엇이든 하나는 해야 한다.
여전히 글은 막막하고, 책을 보다가 영상을 보다가 시간이 흘러갔다.
베란다에서 내다볼 때마다 아이들은 잘 놀고 있다.
은서도 언니, 오빠들을 따라다니며 논다.
아이들이 없는 빈 집.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조급해지고 시간에 쫓기게 된다.
그러던 중 법륜 스님의 영상을 봤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욕심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괴로운 것이고,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괴롭지 않다면, 그걸 포기해서든 다시 연구해서 도전을 해서든 괴롭지 않다면 그건 원이다. 욕심을 버리고 원을 세우라."고 말씀하셨다.
행복도가 높아지는 가장 빠른 방법에 대한 영상을 하나 더 봤다.
"자꾸 편리를 좇으면 안주를 하게 된다. 어릴 때 생활하던 환경으로 돌아가서 자각해야 한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 현재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도 얼마나 복된 일인가. 끊임없이 개선해야 하지만 지금도 살만하다."
스님 영상은 쇼츠라도 그 말씀 하나하나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내가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려주고, 가지고 있는 것을 자각하게 해 주고, 감사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마련해 준 귀한 시간에 최선을 다하되 끝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쉬워하지 말자.
다시 하면 된다.
무엇보다 셋이 잘 노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스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중에는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있었다.